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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70년간 한국거래소는 시장 감시라는 '호각'과 거래 체결이라는 '선수 유니폼'을 동시에 걸쳐온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주식 시장 시스템의 균열이 잇따르는 지금, 자본시장은 플레이어의 과욕이 아닌 거래소의 심판 자격에 좀 더 의문을 품고 있다.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초래한 시장 변동성 확대부터 애프터마켓 개장 직후 빚어진 혼선까지. 시장의 불안이 불거질 때마다 화살은 금융당국 수장이나 개별 금융사의 과욕 등 '사람과 기관'으로만 향하곤 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영리적 시장 운영과 공적 규제 권한을 모두 쥔 거래소의 기형적 운영 체계에 있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먼저, 잣대의 이중성이다. 평소 자산운용사들이 준비하는 일반 ETF 상장에는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3~4개월씩 현미경 심사가 진행된다. 반면 고난도 위험 상품인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예외였다. 불과 2주 만에 상장 심사를 통과했다.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속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업계의 의구심은 컸다. 개별 주식 선물 유동성 부족이나 현·선물 가격 괴리, 기초자산 현물 시장을 뒤흔드는 '왝더독(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 위험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제도적 안전장치 검토를 소홀히 한 채 상품 출시를 서둘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에프터마켓 도입 과정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시장의 유동성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수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대체거래소(NXT)가 600여개 종목으로 야간 거래를 압축한 것과 달리, 거래소는 코스피·코스닥 2700여 개 전 종목을 일거에 열어젖혔다.
출범 초기 성적표는 '유동성 가뭄'에 가까웠다. 애프터마켓 개장 첫날 4시간 동안 변동성완화장치(VI)가 1112회 발동됐다. 약 13초마다 한 번꼴로 정규장의 2.8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 증시와 국내 시장은 거래대금과 유동성 체급이 전혀 다르다. 외형적 거래 환경만 좇은 조급한 도입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국내 정규장조차 수급 쏠림으로 종가 거래량이 얇아진 상태다. 유동성이 메마른 야간 시장의 가격 왜곡은 장기적으로 개인 투자자 매매 손실을 키우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이러한 결정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시장에서는 거래소의 '폐쇄적인 거버넌스'를 지목한다. 거래소는 상장 심사권을 쥔 '규제자'다. 동시에 지수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영리 기업이다. 두 얼굴이 한 지붕 아래서 충돌한다는 지적이다.
이 구조 속에서 금융사는 철저한 '을(乙)'의 처지에 놓이기 쉽다. 거래소의 눈 밖에 나면 신상품 심사나 출시 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정당한 제도 개선 요구나 지수 방법론 수정 건의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신상품 심사를 받는 운용사 입장에선 거래소가 무소불위의 권력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며 "영리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시장의 피로감을 키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거래소 기능의 이해상충을 해소하기 위한 지주사 전환과 시장감시 법인 분리·신설 법안은 10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안 도입 관련 신중론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조직 확대에 따른 운영비 증가가 거래수수료 인상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감시 정보의 집적 효율성, 분리 법인 신설에 따른 내부 인력 반발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거래소 측의 반론도 완강하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 시장감시 체계는 법규상 독립된 시장감시위원회를 통해 독자적으로 운영된다"며 "오히려 감시 기능을 분리하면 시장과의 유기적 연계가 약화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10년째 이어진 논리에 머물기엔 시장 환경이 너무 변했다는 반론도 있다. 조직 분리 비용보다 기능 독점이 야기하는 시장 왜곡 비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감시 정보의 공유 문제 역시 통합 전산망 연동 등 기술적으로 풀어갈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글로벌 선진 시장의 해법은 참고할 만하다. 미국 증시의 저력은 단순히 긴 거래시간이나 풍부한 유동성에 있지 않다. 철저한 '제도적 삼권분립'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약 20년 전 시장의 '선수'와 '심판'을 분리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은 매매 체결에 집중하는 순수 영리 기업이다. 시장감시와 규제는 비영리 독립기구인 금융산업규제국(FINRA)이 전담한다. 청산과 결제는 공공 인프라인 예탁결제원(DTCC)이 맡는다.
시장 내 이해상충을 원천 차단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갖춘 셈이다. 외형적 거래 시간이나 상품 라인업을 따라잡는 것만으로는 선진 시장으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던진다.
주식 시장에서 혼선이 불거질 때마다 인물을 교체하거나 특정 금융사를 압박하는 '대증요법'으로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근본적인 환부를 마주하지 않고는 체질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감시본부의 독립적 분리와 대체거래소와의 실질적인 경쟁 체제 정립이 거론되는 이유다. 거래소가 쥔 '심판의 호각'과 '선수 유니폼'을 분리하지 않는다면 시장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시장의 지적을 되짚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