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으로 저평가기업 지원 '베어허그 M&A 펀드', 자산운용사 vs PEF
입력 2026.09.28 07:00

산은 대신 NPS 활용안 부상…민간 위탁 유력 대안
NPS, 주주관여 강화·행동주의 위탁 검토
신한·라이프·트러스톤 등 수탁자책임 강화
투자한도 조정 여부, 운용사 선정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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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검토하는 '베어허그 M&A 지원펀드'를 두고 운용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을 통한 정책펀드 조성 대신 국민연금공단(NPS) 등 연기금 자금을 민간에 맡기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면서다. 구체적인 자금 공급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운용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기존 주식운용사와 바이아웃 PEF의 이해관계도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투자은행(IB) 및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베어허그 M&A 지원펀드의 재원과 운용방식을 두고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산업은행을 통해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금융당국에서 산업은행의 설립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국민연금 등 연기금 자금을 민간 운용사에 맡기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방안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운용안이 거론된다. ▲기존 국내주식 위탁운용 체계에 행동주의 유형을 별도로 두거나 ▲책임투자형을 확대하는 방안 ▲별도의 PEF 출자사업을 마련하는 방식 등이다. 운용 구조에 따라 자금을 위탁받을 수 있는 운용사군과 선정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 자산운용사들의 주식운용과 주주관여 경험도 중요하지만 방식에 따라 경영권 거래와 대규모 자금 집행 경험을 가진 PEF들이 유리해질 수도 있다"며 "결국 국민연금 자금을 어떤 형태로 시장에 공급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이미 올해 들어 국내주식 위탁운용사의 주주관여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운용체계를 손질하고 있었다. 베어허그 지원펀드에 연기금 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이 구체화할 경우 기존 위탁운용 체계를 활용하거나 확장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지난 3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는 '국내주식 위탁운용의 수탁자 책임활동 활성화 방안'이 보고됐다. 현재 투자일임 형태인 위탁운용 방식을 단독펀드 방식으로 바꿔 위탁운용사가 보유 지분에 대해 자기 명의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우선 책임투자형 위탁운용사 가운데 관련 역량을 갖춘 곳을 대상으로 시범 적용하고, 수탁자책임 활동에 대한 평가 결과를 향후 자금 배정과 회수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그 이후에 행동주의 전략을 별도의 국내주식 위탁운용 유형으로 두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책임투자형에서 주주관여 기능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행동주의 전략에 국민연금 자금을 별도로 배정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의 평가 방식이 달라지면서 운용업계도 관련 조직과 인력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에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나 책임투자 지침·보고서 작성 여부 등이 주요 평가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실제 수탁자책임 활동의 질적 수준이 자금 추가 배정이나 회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신한자산운용은 기존 ESG 관련 의사결정 체계에서 의결권 행사와 주주관여 기능을 분리해 수탁자책임위원회를 별도로 만들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인게이지먼트 전략을 별도 운용 영역으로 두고 최근 관련 인력을 추가로 모집하고 있다. 주주서한과 주주제안, 경영진 면담 등을 통한 주주관여도 이어가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최근 수탁자책임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내부적으로는 임직원이 행동주의 투자 아이디어를 제시해 실제 투자 성과로 이어질 경우 평가와 보상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고 관련 조직을 갖추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실제 어떤 기업을 상대로 어떤 주주활동을 했는지까지 보여줘야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며 "국민연금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수탁자책임 활동이 위탁자금을 유지하거나 추가로 배정받는 문제와 연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베어허그 지원펀드까지 국민연금의 기존 위탁운용 체계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경우, 이 같은 주주관여 경험을 축적해 온 운용사들이 후보군으로 거론될 수 있다. 반면 별도의 PEF 출자사업으로 설계하면 대규모 지분 투자와 경영권 거래, 인수 이후 기업 관리 경험을 갖춘 바이아웃 PEF의 참여 가능성이 커진다.

    그중에서도 '투자한도'는 운용 구조를 결정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 일반적인 국내주식 위탁운용은 특정 종목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제한하지만 베어허그 방식의 M&A는 대상 회사에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준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기존 분산투자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제 투자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시장에서는 행동주의나 베어허그 목적 투자에 기존 분산투자 및 투자제한 요건을 달리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별도의 행동주의 위탁유형을 신설해 투자한도를 조정할지, PEF 출자사업으로 분리할지에 따라 실제 자금을 운용할 주체도 달라질 수 있다.

    자산운용사와 PEF 사이에서는 각자의 강점을 두고 시각도 엇갈린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기업과의 대화와 의결권 행사, 주주제안 등 상장사를 상대로 한 주주관여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기업과 대화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자본배분이나 지배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것은 다른 투자전략"이라며 "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관여를 통한 수익률 제고에 방점을 둔다면 바이아웃 트랙레코드보다 실제 주주관여 경험이 중요하게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PEF업계에서는 베어허그가 실제 경영권 거래까지 이어질 경우 바이아웃 운용사의 역할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대상 기업의 일부 지분을 확보해 주주관여에 나서는 것과 경영권 인수를 전제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자금 모집과 거래 구조, 인수 이후 관리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베어허그가 상당한 지분을 취득해 경영권 거래까지 염두에 두는 방식이라면 기존 주식 위탁운용의 연장선에서만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두 업계가 역할을 나누는 방식도 거론된다. 자산운용사가 상장사 지분을 확보해 주주관여에 나선 뒤 경영권 거래가 본격화하면 PEF가 추가 자금을 투입하거나 공동으로 인수에 참여하는 식이다. 운용업계에서는 베어허그 지원의 범위를 단순 주주관여부터 실제 경영권 인수까지 어디까지 설정할지가 향후 운용사 선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베어허그 지원에 공적 자금을 활용하는 데 대한 부담도 적지 않다. 베어허그는 기존 경영진의 의사와 관계없이 인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주주들을 상대로 지지를 확보하는 방식인 만큼, 실제 투자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의 경영권 갈등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특히 투자대상 기업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지가 민감한 문제로 꼽힌다. 저평가 기업의 가치 제고라는 정책 취지와 별개로 특정 기업에 대한 인수 시도를 공적 자금이 뒷받침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다.

    앞선 운용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특정 주주나 인수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