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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투자공사(KIC)의 전북 이전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연기금·공적 운용기관 종사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과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을 전후해 서울에 남기 위해 KIC나 민간 금융회사로 자리를 옮겼던 일부 운용인력 사이에서는 "전주를 피해 왔더니 다시 전주로 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분위기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국투자공사(KIC)의 주된 사무소를 전북특별자치도에 두도록 하는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예금보험공사와 새마을금고중앙회, 한국벤처투자, 한국은행의 주된 사무소도 전북에 두는 내용의 법안과 함께 이른바 '전북 제3금융중심지 도약 패키지 5법'으로 묶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자리 잡은 전주에 KIC 등 금융기관을 추가로 집적해 연기금·자산운용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작업도 본궤도에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일 수도권 잔류 최소화 등을 포함한 5대 원칙을 제시하고 올해 4분기 중 이전계획을 확정한 뒤 2027년부터 선도기관 이전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KIC가 실제 이전 대상에 포함될지, 이전지가 전북으로 정해질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의 이전 일정이 구체화한 데 이어 KIC의 전북 이전을 명시한 법안까지 등장하면서 기관 내부에서도 그동안 '설'로 치부하던 지방이전 가능성을 현실적인 변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특히 과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을 전후해 서울에 남기 위해 KIC나 민간 금융회사 등으로 자리를 옮긴 일부 운용인력들 사이에서는 "전주를 피해 나왔는데 결국 다시 전주로 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당장 지방이전 우려로 KIC에서 대규모 인력 이탈이 나타나는 단계는 아니지만, 내부에서는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상대적으로 이직 선택지가 넓은 투자부문 주니어 운용역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KIC 내부에서도 지방 이전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KIC 근로자위원회는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한 설문조사까지 실시했다. 아직 결과가 내부에 공표되거나 실제 노조 설립 절차가 시작된 단계는 아니다.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 이전 등 현안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파악하기 위한 성격이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KIC 관계자는 "최근 퇴직자가 우려할 만큼 많은 수준은 아니고, 정부의 구체적인 발표가 나와야 개인들의 의사결정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를 대규모 인력 이탈이 나타나는 단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가장 먼저 흔들릴 수 있는 곳으로는 투자 운용인력이 꼽힌다. 특히 상대적으로 이직 선택지가 넓은 주니어급 운용역이 민간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내부에서도 우려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인사·총무·법무 등 지원부문보다 투자 쪽 주니어들은 외부 선택지가 훨씬 넓은 게 사실"이라며 "실제 이전이 이뤄지고 인력 이탈이 가시화한다면 투자부문 젊은 인력의 이탈이 많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KIC 입장에서 운용인력 유출은 단순한 인사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
KIC는 지난해 13.91%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했고, 지난해 말 총운용자산(AUM)은 역대 최대인 2320억달러에 달했다. K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 본사와 5개 해외거점에서 근무하는 전체 인력은 353명으로, 이 가운데 투자전문인력은 174명이다. 170여명의 투자전문인력이 300조원이 넘는 해외자산 운용을 뒷받침하고 있는 만큼 핵심 운용인력의 확보와 유지는 기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로 꼽힌다.
KIC의 인력 문제는 과거부터 전주 이전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쟁점으로 꼽혔다. 진승호 전 KIC 사장은 2023년 기자간담회에서 전주 이전 시 우수 인력 이탈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KIC가 해외자산을 운용하고 해외 금융회사들과의 접촉과 출장이 잦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금융투자업계가 떠올리는 선례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서울에서 전주로 이전한 2017년을 전후해 운용인력 이탈이 크게 늘었다. 국민연금 운용인력 퇴직자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에서 2016년 30명, 2017년 27명으로 증가했다. 2018년 당시에는 운용인력 정원 대비 43명이 부족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전 직전인 2017년 초에는 해당 연도에만 20명 안팎이 추가로 기금운용본부를 떠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전년도 퇴직자까지 합치면 약 1년 사이 50명가량의 운용인력이 빠져나가는 셈이었다. 이에 국민연금은 운용직 보수 인상과 근무여건 개선, 조기 채용 등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당시 인력 이탈을 지방 이전 하나만의 결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민간과 비교한 보수 수준과 조직 내외부 상황 등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전주 이전 과정에서 불거졌던 인력 확보 문제가 이번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에서도 일종의 '학습효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로 전북과 지역 정치권은 국민연금에 KIC를 비롯한 금융기관을 더해 자산운용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하나만으로는 전문인력 정착과 민간 금융회사의 동반 진출에 한계가 있는 만큼 관련 금융기관을 한곳에 집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에도 이 같은 취지가 담겼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싼 자산운용업계의 관심은 기관의 '주소'를 어디로 옮기느냐를 넘어서는 분위기다. 국민연금과 KIC, 공제회 등 대규모 자금을 굴리는 기관의 경쟁력이 전문인력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지방에 기관을 집적하는 과정에서 서울 금융권에 집중된 운용인력과 민간 금융 생태계까지 함께 이동시킬 수 있을지가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국토 균형발전도 좋고 지역 경제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인재 이탈과 신규 인재 영입에 애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