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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3분기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인공지능(AI)·반도체 인프라와 K-뷰티를 비롯한 소비재 등 성장성이 확인된 자산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어졌다. 시중 유동성이 늘며 M&A 시장 전반에 온기가 확산했다기보다는 자본이 움직일 이유가 명확한 곳으로 거래가 집중되는 모습이다.
3분기 집계된 M&A 거래는 58건, 거래금액은 약 31조원 규모다. 2분기 81건, 약 29조원과 비교하면 건수는 줄었어도 규모는 유지됐다. 3분기 중 조 단위 거래 8건의 규모만 20조원에 육박했다. AI나 반도체 등 자금이 몰려가는 자산들의 몸값이 커지면서 시장 규모를 떠받친 셈이다.
삼성과 SK그룹을 제외하면 이 같은 흐름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올해 3분기까지 양사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거래는 전체 거래금액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 이들을 제외한 주요 대기업들은 비핵심·성숙 자산을 매각하거나 보유지분을 유동화하고 신규 투자는 에너지·전력 인프라, 반도체 소부장 등 성장 경로가 비교적 명확한 분야에 집중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포스코그룹은 계열사 소수지분을 활용해 2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했고, 롯데그룹은 롯데렌탈을 약 1조3000억원에 매각했다. 한화그룹 역시 비영업용 부동산 등 보유자산 유동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에너지 사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집계에는 반영되지 않았으나 GS그룹 역시 수처리 자회사 GS이니마 등 자산 매각을 추진하는 동시에 AI 데이터센터(DC)와 전력 인프라 등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자본 효율화, AI 후방 인프라 투자에 집중하는 한편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중견·중소기업의 자본시장 활용 문턱은 높아지고 있다. 업종 자체의 성장 기대만으로 거래가 성사되기보다는 실적과 시장 지위, 향후 투자금 회수 경로가 뚜렷한 자산으로 돈이 쏠리는 탓이다. 실제로 3분기 들어 AI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되는 인프라·기술 기업과 해외 시장에서 성장성을 입증한 소비재·유통 기업이 유력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투자 기회를 찾는 시선도 반도체에서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전력·냉각 인프라와 로봇, IT 서비스 등 AI 산업의 전후방으로 넓어지고 있다. AI 반도체 설계기업 딥엑스가 약 37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나섰고, 반도체 장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부품 등을 생산하는 서진시스템, 로봇 자동화 기업인 원익로보틱스 역시 수천억원 규모 자금 조달을 이어갔다. 투자자 풋옵션 문제를 마주한 클라우드 관리서비스(MSP) 업체 메가존클라우드도 8000억원 조달을 완수했다.
대기업은 물론 글로벌 PEF 역시 막대한 설비투자나 기술력, 전문 인력이 필요한 반도체 핵심 사업에 직접 투자할 기회가 제한적인 만큼 AI 설비투자가 늘어날수록 함께 수요가 증가하는 영역에서 투자 기회를 찾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히 'AI' 간판을 단 기업이 아니어도 전방 자본적지출(CAPEX) 확대가 매출과 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업모델들이 투자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공개매수에 실패한 맥쿼리자산운용의 가비아 투자부터 서진시스템, 메가존클라우드도 투자나 조달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나고 있지만 결국 돈은 몰리고 있다"라며 "AI 붐에 따라 실적이나 기업가치가 올라간다는 논리가 뒷받침된다면 대규모 자금조달을 성사시키는 과정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 성장성이 입증된 소비재 분야에서도 거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K-뷰티가 독보적인 투자처로 부각됐다면 올해는 화장품을 넘어 식음료(F&B), 패션 등 확장성을 갖춘 소비재 전반으로 투자 범위가 넓어지는 모습이다. 베인캐피탈이 인수한 공차,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여성 위생용품 브랜드 라엘, 치킨 프랜차이즈 본촌 등 수천억원대 거래가 성사됐다. 해외 유통망에 강점이 있거나 추가적인 지역 확장이 가능한 소비재 기업이라는 점이 공통분모로 꼽힌다.
글로벌 PEF의 관심 역시 이미 몸값이 오른 인디 브랜드나 프랜차이즈 외 제조·유통 밸류체인으로 꾸준히 향하고 있다. CVC캐피탈은 유통업체 실리콘투의 3000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맥쿼리자산운용은 색조·기초 화장품 ODM 업체인 화성코스메틱과 나우코스를 3000억원에 인수했다. 해외 흥행으로 확인된 K-소비재 투자 논리가 생산능력과 글로벌 고객사, 해외 유통망을 갖춘 플랫폼으로 번지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반면 업황 회복이나 실적 개선을 전제로 기업가치를 설명해야 하는 자산은 여전히 매도자와 원매자 사이 눈높이를 좁히기 쉽지 않다는 평이다. 늘어난 유동성이 자산 가격 전반을 끌어올리는 시장이라기보다는 AI 수혜나 해외 확장성, 안정적 현금창출력처럼 투자 논리를 이미 입증한 자산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온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