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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지만 주요 자회사의 기업공개(IPO)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모회사 주주를 설득해야 하는 부담이 남으면서 해외 증시에서 상장 해법을 찾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일감 확보가 어려워진 증권사들은 국내 기업의 해외상장뿐 아니라 외국 기업의 국내 상장 유치에서도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로보틱스와 SK에코플랜트 등은 상장 일정을 구체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LS그룹 에식스솔루션즈와 DN솔루션즈가 상장을 철회한 데다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에 따른 주주보호 부담도 남아 있어 해외상장으로 눈을 돌릴 유인이 커졌다는 평가다.
해외 증시 입성을 위한 절차에 나선 계열사도 있다. 두산그룹의 미국 수소·연료전지 자회사 하이엑시엄은 최근 국내외 IB에 주관사 선정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보내며 나스닥 상장 절차에 착수했다.
상장 추진에 필요한 기준은 제시됐지만 '원칙 금지·예외 허용'이라는 기조 아래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상장의 필요성과 주주보호 방안의 적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만큼 기업과 주관사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관투자자 비중이 높은 모회사는 자회사 상장이 주주가치에 미칠 영향을 놓고 기관들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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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회사 상장을 결정해야 하는 모회사로서는 셈법이 복잡하다. 자회사는 자금조달과 사업 확장을 위해 상장이 필요하지만 모회사는 지분가치 할인과 일반주주 반발까지 고려해야 해서다. 자회사와 주관사가 실무 준비를 마치더라도 상장에 따른 이익을 모회사 주주와 어떻게 공유할지 그룹 차원의 조율이 선행돼야 하는 셈이다.
IPO를 기다려온 재무적투자자(FI)들의 회수 셈법도 복잡해졌다. 상장이 지연되면 투자금 회수 시점을 다시 조율해야 하고 기존 투자계약의 상장 기한이나 투자자 보호 조항을 둘러싼 협의도 필요해질 수 있어서다. 해외상장과 제3자 매각 등 대체 출구를 함께 검토해야 하는 배경이다.
이에 해외 증시를 활용하는 방안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상장에도 모회사 주주보호 의무는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상장 심사는 해외 거래소가 담당한다는 점에서 국내 중복상장 심사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주보호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제재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사회·특별위원회 의결과 주주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최대 10억원의 제재금과 1일간 매매거래정지 조치를 받는 데 그쳐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FI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추진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대 주주인 TPG가 보유한 구주를 기초로 ADR을 발행해 미국 시장에서 유동화하는 방식이었다. 신주 발행을 통한 회사의 자금조달보다 기존 FI의 회수에 초점이 맞춰졌다. 다만 카카오 이사회가 회사에 신규 자금이 유입되지 않고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돌아갈 실익도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해당 상장 구조에 반대하면서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전해액 기업 엔켐은 미국 자회사 엔켐아메리카와 나스닥 상장사 더그로우허브의 합병을 통한 상장·자금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자회사가 국내 증시에 별도로 입성하는 대신 기존 미국 상장사와 합병하는 구조다. 국내 자회사 상장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해외 증시를 활용한 자금조달 경로라는 평가다.
다만 해외상장을 중복상장 규제의 손쉬운 우회로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많다.
현지 상장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데다 국내외 공시와 회계·법률 검토 등 추가 과제가 뒤따라서다. 카카오모빌리티처럼 상장에 따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놓고 모회사와 FI 간 이견이 생길 수도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상장이 쉬운 일도 아니고 국내 중복상장이 막혔다고 해외를 대안으로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그래도 자금을 회수하거나 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해외상장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복상장 규제로 IPO 일감이 줄어든 국내 증권사들은 외국 기업의 국내 상장 유치도 검토하는 분위기다. 국내 IPO 후보군만으로 일감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어 해외에서 새로운 상장 수요를 찾으려는 것이다.
지난달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미국 바이오기업 인제니아테라퓨틱스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밖에도 한국투자증권은 미국에 본사를 둔 브리즈바이오와 이노크라스, 파인트리테라퓨틱스의 국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증권도 미국 액체생검 기업 ETI의 코스닥 상장을 주관하는 등 해외 바이오기업을 중심으로 후속 후보군이 형성되고 있다.
해외 기업 유치 역시 손쉬운 대안은 아니라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상장하지 못해 한국을 차선책으로 찾는 기업도 많다는 평가다. 국내 사업을 확대하거나 브랜드를 알릴 필요가 있다면 한국 상장의 이점이 있겠지만 이런 접점을 갖춘 후보군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해외 기업이 국내에 상장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며 "과거 국내 상장한 해외 기업들의 나쁜 선례가 많고 해외 실사도 까다로운 데다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몰라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