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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몇 년간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상장사 바이아웃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경영권 인수→공개매수→자진 상장폐지’ 공식이 예전만큼 쉽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주주들의 공개매수 가격과 거래 절차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고 행동주의 펀드 등 주요 주주들의 개입도 늘면서 공개매수를 통한 지분 확보가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경영권 인수 시 일반주주 지분까지 사들이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도 가시화하면서 PEF의 상장사 바이아웃 비용과 셈법도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맥쿼리PE의 특수목적법인(SPC) 디씨케이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3일 김홍국 대표 등 가비아 최대주주와 체결한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한다고 공시했다. SPA상 거래종결을 위한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맥쿼리PE는 김 대표 등 3인이 보유한 가비아 지분 24.4%를 주당 4만8000원, 약 1570억원에 인수하는 동시에 나머지 주주들을 대상으로 같은 가격에 공개매수를 추진했다. 공개매수가격은 공개매수 직전 종가보다 41.6%, 직전 1개월 평균 주가보다 56%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17일 공개매수를 마감한 결과 응모 물량은 최소 매수예정수량의 22% 수준에 그쳤다.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맥쿼리PE가 제시한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상당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들의 반발이 공개매수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했다.
지분 24%가량을 가진 미리캐피탈과 14%가량을 보유한 얼라인파트너스가 각각 가격과 거래 절차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미리캐피탈은 공개매수가격이 기업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가격 인상을 요구했고, 얼라인은 특정 가격보다는 이사회의 독립적이고 공정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직전 주가에 40%가 넘는 프리미엄을 얹고도 공개매수에 실패한 가비아는 최근 달라진 상장사 바이아웃 환경을 보여주는 사례다. 주요 주주들이 회사의 미래 실적과 자산가치, 경영권 프리미엄은 물론 거래 절차까지 적극적으로 따지면서 PEF 입장에서는 시장가격에 일정 수준의 프리미엄을 얹는 것만으로 공개매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한 자문업계 관계자는 “가비아 사례처럼 거래 당사자들이 ‘설마 안 되겠느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 사례들을 보면 실제로 무산되거나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며 “글로벌 PEF도 예상만큼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공개매수를 수차례 진행하고 거래가 장기화하면서 하우스 입장에서 한동안 고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PEF의 공개매수를 활용한 상장사 바이아웃은 2023년 UCK파트너스·MBK파트너스의 오스템임플란트, 한앤컴퍼니의 루트로닉 인수 등을 계기로 국내 M&A 시장의 주요 거래 구조로 자리 잡았다. 2024년에는 한앤컴퍼니의 쌍용C&E,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락앤락, MBK파트너스의 커넥트웨이브, 아키메드의 제이시스메디칼 등으로 확산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 차례 공개매수만으로 상장폐지에 필요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공개매수를 반복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잔여 지분을 확보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앤컴퍼니는 지난해 SK디앤디 상장폐지를 위해 두 차례 공개매수를 실시했지만 목표 지분 확보에 실패했다. 최근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증권신고서에 향후 최소 3년간 추가 공개매수 등을 통한 상장폐지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베인캐피탈의 에코마케팅 인수도 공개매수가 장기화한 사례다. 베인캐피탈은 두 차례 공개매수를 통해 약 91%의 지분을 확보한 뒤 지난 3월 같은 가격인 주당 1만6000원에 세 번째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EQT의 더존비즈온 인수 역시 계약 후 상장폐지까지 약 8개월이 걸렸다. EQT는 지난해 11월 최대주주 지분 인수를 위한 SPA를 체결한 뒤 최대주주와 일반주주에게 동일한 주당 12만원을 제시했지만 두 차례 공개매수를 진행했고, 이후에도 장내에서 잔여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 최종적으로 현금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지분 100%를 확보한 뒤 지난 7월 상장폐지를 마무리했다.
공개매수 자체가 상장사 바이아웃 수단으로서 힘을 잃었다기보다는 상장폐지까지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늘어나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주가 대비 일정 수준의 프리미엄만 제시하면 일반주주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접근보다는 회사의 내재가치와 주요 주주의 요구까지 감안해 처음부터 공개매수 가격과 자금 조달 계획을 짜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최근 PEF의 포트폴리오나 거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주주들이 많아졌고, PEF를 둘러싼 여론이나 정책 환경도 과거보다 부담스러워졌다”며 “무리하게 거래를 추진하기 어려우니 상장사 딜은 가급적 줄이는 분위기도 있는데, 그렇다고 비상장사에서 좋은 매물을 찾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도 변화도 PEF들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7일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장사 지분을 취득해 25% 이상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거나, 이미 25% 이상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지분을 추가 취득하는 경우 공개매수 의무가 발생한다. 인수자는 기존 보유분을 포함해 발행주식의 ‘50%+1주’까지 일반주주에게 공개매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일반주주도 최대주주와 같은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심사를 남겨두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상장사 경영권을 인수하는 단계부터 PEF가 준비해야 할 자금 규모와 투자심의 과정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예컨대 기존 보유지분 없이 최대주주 지분 30%를 인수한다면 일반주주를 대상으로 약 20%포인트를 추가 공개매수할 자금까지 마련해야 한다. 최대주주의 기존 지분율 등에 따라 추가 부담은 달라지지만, 이후 완전자회사화와 상장폐지까지 추진한다면 잔여 지분 확보 비용도 별도로 고려해야 한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PEF의 바이아웃은 갈수록 난도가 높아지고 예전처럼 수익을 내기도 어려워지면서 부동산이나 크레딧 등 다른 투자처에 눈을 돌리는 곳도 있다”며 “불확실성은 커지고 거래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져 과거에 통했던 공식이 더 이상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는 ‘좋은 시절은 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