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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기업을 인수하는 시점과 차입을 일으키는 시점을 분리하고 있다. 에쿼티(자기자본)로 인수를 먼저 마친 뒤 리캡(자본재조정)을 통해 뒤늦게 대출을 붙이는 방식이다. 매각 단계에서는 원매자가 신규 인수금융을 조달하지 않아도 되도록 기존 대출을 승계할 수 있게 설계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인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거래에서 PEF는 보유 펀드와 은행·증권사 등에서 조달한 인수금융을 합쳐 자금을 마련한다. 인수금융 확약서(LOC) 확보와 대주단 구성이 거래 종결의 주요 선행 조건으로 작용해왔다.
최근에는 인수금융 의존도를 낮추거나 차입 시점을 거래 종결 이후로 미루는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에쿼티로 매매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경영권 이전과 실적 확인을 거친 뒤 인수금융이나 리캡을 붙이는 방식이다. 차입 자체를 없애기보다는 거래 종결과 금융조달을 분리해 클로징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웰투시인베스트먼트의 SI플렉스 인수가 대표적이다. 웰투시는 지난해 7월 SI플렉스 지분 84.1%를 약 4300억원에 인수하면서 별도의 인수금융을 활용하지 않았다. 블라인드펀드와 프로젝트펀드 등 에쿼티를 중심으로 인수대금을 마련했고, 매도인인 원동일 전 대표도 매각대금 일부를 후순위로 재투자했다.
웰투시는 인수 약 1년 만인 최근 산업은행과 키움증권 공동 주선으로 5000억원 규모의 리캡을 마쳤다. 인수 단계에서 차입을 일으키지 않아 추가 대출 여력이 남아 있었고, 1년 간의 회사 밸류업을 거친 뒤 차입을 붙였다. 웰투시와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한 원 전 대표는 이번 거래로 투자금을 전액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의 롯데렌탈 인수도 유사한 구조다. TPG는 롯데렌탈 지분 61.17%를 1조3105억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매매대금을 전액 에쿼티로 마련할 계획이다. 인수금융 없이 거래를 종결한 뒤 시장 상황과 롯데렌탈의 재무 상태를 살펴 리캡을 추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은 만큼 거래는 다음달 종결될 전망이다.
반대로 매각 과정에서 기존 차입을 유지해 원매자의 부담을 낮춘 구조도 등장했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울산 탱크터미널 운영사 센트럴터미널코리아(CTK)를 매각하면서 기존 인수금융을 원매자가 승계할 수 있도록 대출 약정을 변경했다. 최대주주가 바뀌더라도 경영권 변동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매각 이후에도 기존 대출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통상 경영권이 바뀌면 인수금융 계약의 경영권 변동 조항이 작동해 기존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 원매자는 매매대금과 별도로 기존 차입을 갚기 위한 신규 금융까지 마련해야 한다. 기존 대출을 승계할 수 있으면 원매자의 자금조달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매도자도 거래 종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의 추세가 차입이 어려워졌다기보다는 거래 확실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 변화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찰과 거래 종결 단계에서는 자금조달 조건을 없애 매도자에게 확실성을 제공하고, 인수 이후에는 피인수기업의 실적과 현금흐름, 담보가치를 확인한 뒤 레버리지를 붙이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대주단 입장에서도 사업 안전성을 확인한 뒤 대출을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금리가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인수금융 금리가 6%대 중후반에서 형성되면서 차입을 활용해 얻는 레버리지 효과가 과거보다 줄었다. 프로젝트펀드 등으로 자금을 충분히 모을 수 있는 운용사라면 거래 종결 단계의 차입을 줄이고 이후 시장 상황을 살펴 금융구조를 다시 짜는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인수금융 주선 경쟁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거래 종결에 필요한 자금을 한꺼번에 공급하는 데서 나아가 인수 이후 리캡과 매각 단계의 대출 승계까지 고려한 금융구조를 제시하는 역량이 중요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선(先) 에쿼티·후(後) 리캡 구조는 초기에 펀드 부담이 크고, 포트폴리오 기업의 부채가 뒤늦게 쌓여 향후 투자여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리캡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좋은데 늦어질 경우 펀드 자금이 예상보다 오래 묶이거나 할 수도 있다"며 "운용사 입장에서 리캡으로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리금 부담은 포트폴리오 기업이 떠안는 만큼, 현금창출력에 비해 과도한 차입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