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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회계법인이 LG전자와 삼성SDI 등 대형 상장사의 외부감사인 자리를 놓고 하반기 수임전에 들어갔다. 올해 자유수임 대상 기업 수는 늘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초대형 기업이나 대형 금융지주 물량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감사부문의 성장세마저 둔화하면서 주요 감사 계약을 확보하기 위한 회계법인들의 물밑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1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 삼성SDI, 삼성E&A, ㈜두산, 포스코, 포스코홀딩스 등이 2027년 외부감사인 선정을 앞두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IBK기업은행과 NH투자증권 등이 주요 대상으로 꼽힌다.
현재 LG전자는 EY한영이 외부감사인을 맡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와 LG생활건강, 삼성SDI, ㈜두산, IBK기업은행은 삼일PwC이 감사를 맡고 있다. 삼성E&A와 포스코, NH투자증권의 현 감사인은 EY한영이다. 주요 회계법인은 이미 상당수 기업에 감사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다. 회사별 일정에는 차이가 있지만 일부 기업은 오는 11월부터 감사위원회 등을 거쳐 차기 감사인을 결정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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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신(新)외부감사법에 따라 금융당국으로부터 3년간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은 이후 6년간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다. 자유수임 기간에는 통상 3개 사업연도 단위로 동일 감사인과 계약한다. 기존 계약이 올해 끝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회계법인들이 새로운 3년 계약을 따내기 위한 경쟁에 나선 것이다.
특히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등 감사위원회 의무설치 회사는 사업연도 개시 전까지 감사인을 선임해야 한다. 그 외 회사는 사업연도 개시 이후 45일 이내까지 선임할 수 있다. 감사 계약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만큼 회계법인들은 매년 하반기 수임전에 나서는데, 올해도 전년 수준의 수임 실적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올해 자유수임 대상 기업 수 자체는 적지 않다. 회계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올해 자산 2조원 이상 자유수임 대상 기업이 100곳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직전 연도 30여곳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규모다.
다만 수임 규모와 상징성을 모두 갖춘 이른바 '대어'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게 업계 평가다. 직전 수임전에서는 기아와 하나금융지주, 현대모비스 등 대형 기업이 한꺼번에 자유수임 시장에 나왔다. 기아와 하나금융은 EY한영이, 현대모비스는 삼정KPMG가 각각 수임했다.
올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초대형 기업이 주요 감사인 선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권에서도 대형 금융지주 물량이 많지 않다. NH투자증권과 IBK기업은행 등이 주요 감사인 선정 대상으로 꼽힌다.
비금융권에서는 LG그룹 계열사가 상대적으로 눈에 띈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이 나란히 감사인 선정을 앞두고 있다. 삼성그룹에서는 삼성SDI와 삼성E&A가 주요 대상이며 ㈜두산과 포스코도 차기 감사인 선정에 나선다.
올해 수임전은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존 대형 고객을 지켜야 하는 '수성전' 성격도 짙다. 현재 주요 선정 대상 가운데 LG디스플레이와 LG생활건강, 삼성SDI, ㈜두산, IBK기업은행은 삼일PwC가, LG전자와 삼성E&A, 포스코, NH투자증권은 EY한영이 각각 감사를 맡고 있다.
회계업계가 이들 대형 상장사의 감사 계약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단순히 감사보수 때문만은 아니다. 주요 대기업의 감사 실적은 회계법인의 시장 지위와 산업별 전문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트랙레코드'다. 특히 삼성전자와 같은 초대형 기업의 감사인은 회계업계에서 법인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큰 자리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대어 수임을 단순한 일감 확보를 넘어 회계법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보는 이유다.
실제 삼정KPMG가 최근 업계 2위 자리를 굳히는 과정에서도 삼성전자 감사 수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신외부감사법 도입 이전까지 삼일PwC가 오랫동안 감사를 맡아왔지만 주기적 지정제를 거친 뒤 자유수임 시장에서 삼정KPMG를 감사인으로 선택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를 고객사로 확보하면서 감사 매출뿐 아니라 시장에서 삼정의 위상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대형 기업의 감사 경험은 이후 같은 산업의 다른 고객을 확보하는 데도 경쟁력이 된다. 특정 산업의 주요 기업을 다수 감사할수록 해당 업종에서 발생하는 회계·규제 이슈와 위험 요인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업계가 대형 고객 확보에 더욱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정체된 감사부문 성장세도 있다. 최근 주요 회계법인의 감사부문 매출 증가율은 한 자릿수 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업계 1위인 삼일PwC조차 2026회계연도 감사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하며 역성장했다. 감사 대상 기업과 업무량은 늘어나는 반면 감사보수는 하락하면서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장사 평균 감사보수는 2023년 2억6500만원에서 2024년 2억5900만원, 지난해 2억5200만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2억4600만원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은 최근 회계법인 간 과도한 가격 경쟁이 감사보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저가 수임에 대한 감독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대형 회계법인에 과도한 저가 수임이 감사 투입 인력과 시간 감소, 감사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대형 금융지주의 경우 감사보수가 100억원을 훌쩍 넘기도 하지만 그 외 금융사는 수십억원 안팎 수준"이라며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발행한 기업은 미국에도 관련 보고를 해야 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감사보수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자유수임 시장에 나왔다고 모든 회계법인이 제안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사 수임의 첫 관문은 '독립성' 확보다. 회계법인이 해당 기업에 감사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이를 사전에 정리해야 한다. 소속 파트너 등이 해당 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점검 대상이다. 실제 올해도 기존 컨설팅 업무와의 독립성 문제로 일부 대형 회계법인이 주요 상장사의 감사인 선정 경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독립성 문제를 해소한 뒤에는 산업 전문성과 감사 품질이 본격적인 경쟁 요소가 된다. 감사인 선정은 감사보수와 투입 인력 등 사전에 정해진 지표에 따른 정량평가를 기본으로 하지만, 감사위원회의 정성적 판단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산업에 대한 이해도와 감사 역량, 과거 감사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만큼 금융당국의 감리 과정에서 문제가 지적된 이력 등은 감점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같은 업종의 기업을 얼마나 많이 감사하고 있는지, 해당 산업의 회계·규제 이슈와 잠재 위험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등은 각 회계법인이 내세우는 주요 강점이다.
다른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같은 업종의 여러 회사를 감사하면 업계에서 발생하는 주요 이슈를 폭넓게 파악하고 있어 개별 회사가 놓칠 수 있는 리스크를 미리 짚어낼 수 있다"며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로 동종업계에서 적용된 세액공제나 회계 이슈 등을 빠르게 파악해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사마다 세부 일정은 다르지만, 이미 제안서를 제출하고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인 만큼 대부분 연말 이전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대형 상장사의 감사 실적 자체가 산업 전문성과 법인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레퍼런스고, 신규 대형 고객을 확보하는 것만큼 기존 고객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