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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토큰증권(STO) 제도 시행을 앞둔 증권사들의 고민이 '어떻게 발행할 것인가'에서 '무엇을 발행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분산원장과 계좌관리 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 작업에는 속도가 붙고 있지만, 정작 이를 통해 투자자에게 내놓을 상품군은 여전히 미술품과 가축 등 일부 자산에 한정돼 있어서다.
2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는 미술품이나 한우처럼 눈에 보이는 실물자산을 쪼개 파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특정 사업에서 발생하는 미래 수익 자체를 증권화하려는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 가령 식당을 새로 열기 위한 자금을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뒤 향후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나눠주는 식이다.
금융당국도 이른바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의 제도화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하면서 토큰증권 시장의 다음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지 증권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일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지난 2월 전자증권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가 마련된 토큰증권 제도는 내년 2월 4일부터 시행된다. 첫 단계에서는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MMF와 사모사채, 비상장주식 신탁방식 등에 토큰화를 허용하고 조각투자증권은 공모 단계부터 토큰증권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정형증권까지 순차적으로 대상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증권사들의 인프라 경쟁은 이미 본격화했다. 코스콤이 구축 중인 공동 토큰증권 플랫폼 'KoSTO'에만 이달 초 기준 13개 증권사가 참여하고 있다. 코스콤은 발행 인프라 구축과 한국예탁결제원 총량관리 시스템 연계 테스트도 진행했다. 지난 6월 금융투자협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주요 증권사 10곳 가운데 9곳이 토큰증권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플랫폼에 무엇을 올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투자계약증권 시장은 현재 미술품·한우·한돈 등에 집중돼 있다. 올해 들어 5월 20일까지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투자계약증권 신고서는 6건으로, 데이터젠·스탁키퍼·열매컴퍼니·투게더아트 등 일부 사업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토큰증권 인프라는 빠르게 확대되는 반면 이를 채울 상품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투자계약증권은 여러 투자자가 공동사업에 돈을 투자하고, 주로 다른 사람이 수행한 사업의 결과에 따라 손익을 배분받는 권리다. 2009년 자본시장법에 증권의 한 종류로 포함됐지만 실제 활용은 미미하다가 미술품·한우 조각투자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내년부터는 증권사를 통한 투자계약증권의 중개도 가능해진다.
현재 발행된 투자계약증권은 대부분 '공유지분형'이다. 예컨대 조각투자 사업자가 미술품 한 점을 매입하고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할 경우 투자자에게 그림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받을 권리뿐 아니라 해당 미술품의 공유지분도 함께 부여하는 구조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발행사가 부실해졌을 때 투자자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다. 발행사가 미술품을 온전히 소유한 상태라면 회사가 도산했을 때 다른 채권자들이 미술품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반면 투자자들이 미술품을 공동소유하고 있으면 발행사의 재산과 분리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투자계약증권 심사에서 강조해 온 '도산절연' 장치다.
문제는 이 구조가 유통에는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는 점이다. 투자계약증권을 다른 투자자에게 넘길 때 증권만 이전해서는 안 되고 뒤에 붙어 있는 실물자산의 공유지분까지 함께 이전해야 한다. 금융위 역시 현재 공유지분형 투자계약증권은 증권 이전과 별도로 민법상 공유지분 변경 절차가 필요해 자유로운 유통에 제약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증권 계좌대체와 공유지분 이전을 기술적·제도적으로 연계할 수 있을지 연구에 착수했다.
최근 증권사와 조각투자 업체들이 눈을 돌리는 곳이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이다. 공유할 실물자산 자체가 없는 사업도 투자계약증권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자본시장 규제 자문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최근에는 '이런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투자계약증권으로 공모할 수 있도록 당국과 협의해 달라'는 요청이 적지 않다"라며 "미술품처럼 공유지분을 붙일 수 있는 상품뿐 아니라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을 보다 폭넓게 허용해 달라는 게 시장의 요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가령 투자자 50명이 자금을 모아 식당 하나를 열고, 향후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주는 구조다. 미술품이나 한우처럼 투자자 명의로 공동소유할 핵심 실물자산이 없어 사업의 성패 자체가 투자수익을 좌우한다. 콘텐츠 제작이나 각종 프로젝트 사업 등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 활용 대상은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순수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발행회사와 공동사업 자산을 명확히 분리하기 어려워 발행사가 도산하면 투자자 보호가 취약해질 수 있다. 투자자가 보유한 것은 사업자로부터 수익을 받을 계약상 권리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자산이 다른 채권자들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면 발행사 부실 때 사실상 일반 채권자와 비슷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이에 따라 당분간 투자계약증권에 대해서는 엄격한 개별 심사 방식을 유지할 방침이다. 다만 사업형 투자계약증권 자체를 막아놓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갖추면 발행할 수 있을지 기준을 '준정형화'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시장에서는 이 연구 결과가 향후 토큰증권 시장의 외연을 결정할 변수로 보고 있다. 미술품·한우 등 기존 상품만으로는 증권사들이 구축 중인 발행·유통 인프라를 채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증권사들이 로펌 등 자문사에 문의하는 내용도 기술 자체보다는 "이 상품을 당국이 허용하는 투자계약증권이나 토큰증권 구조로 만들 수 있느냐"에 집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내년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 이후에는 기존 투자중개업 인가를 가진 증권사가 별도의 '토큰증권 면허'를 받지 않더라도 자신의 인가 범위 안에서 토큰증권을 취급할 수 있다. 금융위는 투자계약증권의 장외거래소 편입 여부도 공유지분형 상품의 유통구조 등에 대한 추가 연구를 거쳐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상품의 외연 확대가 곧 시장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사업형 증권은 기초자산의 가격보다 사업자의 사업수행 능력을 평가해야 하는 만큼 일반투자자가 위험을 판단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 토큰증권이라는 새로운 '그릇'에 무엇까지 담게 할 것인지와 투자자 보호 사이의 균형이 향후 제도 설계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제도에는 당국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상품의 모습이 있는데, 시장에서는 그 범위 바깥에 있는 상품을 가져와 가능한 구조인지 묻는 경우가 많다"라며 "결국 당국과 사전협의를 거쳐 구조를 수정하고 투자자 보호장치를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