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상장 문제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이미 상장을 전제로 한 중복상장 논란을 피할 거래 구조나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불식할 논리를 마련하고 있다.
주주들은 '굳이 왜 해야 하느냐'를 묻고 있는데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이미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간 모습으로 비친다. 정말 결정된 것이 없는 건지, 아니면 답은 정해져 있는데 정당화 논리를 마련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지 애매하다.
지난 1일 회사가 뉴스룸을 통해 내놓은 공식 입장문도 이 지루한 진실공방의 연장선상에 있다. 요약하면 ▲솔리다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결정된 것은 없고, ▲모회사가 충분한 재무 여력을 갖추고 있지만 모든 투자를 자체 자금으로 집행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며, ▲모든 판단의 기준은 장기적인 주주가치라는 게 골자다. 필요할 경우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시장 반응에서 답답함이 전해진다. 그래서 상장한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정보를 가장 많이 쥔 회사가 빙빙 돌리기만 할 뿐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으니 주주들만 불안한 형국이다. 회사보다 앞서가는 보도가 반복해서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결정된 것이 없다지만 IB들은 이미 솔리다임 상장 주관을 따내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에 돌입했다. IB들의 움직임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다. 거래가 성사돼야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고객사가 원하는 바를 넘겨짚어서라도 실행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영업 준비가 한창이라 해서 상장이 확정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장을 전제로 한 거래 구조와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피할 논리까지 구체적으로 검토되는 정황을 보면 의문이 남는다. 주주들이 아직 상장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데 자문사들이 실행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보니 회사와 주주, 자문사 사이 논의가 서로 다른 단계에 있는 셈이다. 정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는 단계인지, 내부적으로는 방향을 잡았는데 민감한 사안이라 공식화에 신중한 것인지 심증이 쌓여간다.
증권가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담당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솔리다임 상장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무조건 악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문시장 큰손인 SK그룹의 의사결정에 대놓고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기존 주주가치 희석 우려를 뛰어넘을 만큼 명확한 효용을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외부 자본을 유치해 SK하이닉스가 얻는 게 무엇인지, 그 이익이 솔리다임 지분 일부를 내주는 비용보다 크다는 설명이 필요하다. 회사도 내놓지 못한 답을 증권가가 먼저 마련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니 이들조차 "굳이 왜 하는 걸까요" 하고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실정이다.
회사가 장기 주주가치를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하기는 했으나 이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남는다.
프리IPO나 상장에 따른 지분 희석은 거래가 이뤄지는 순간 현실화한다. 외부 자본으로 솔리다임을 성장시킨 결과 SK하이닉스 장기 주주가치가 더 커지는지는 한참 뒤에야 확인할 수 있다. 당장 치러야 할 비용은 분명한데 대가가 충분한지는 먼 미래에야 알 수 있는 구조다. 향후 솔리다임 가치가 크게 오른다 해도 100% 자회사로 유지했을 때보다 기존 주주에게 더 유리한 선택이었는지를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와 나스닥 상장 채비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모습도 의구심을 키운다. 회사 설명대로 상장이 정말 백지 상태라면 수조원 규모의 프리IPO에 나설 투자자들은 무엇을 믿고 자금을 준비하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상장만이 프리IPO의 회수 방안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상장 가능성과 시점이 프리IPO 투자 가격이나 기대수익률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프리IPO에 이어 나스닥 상장까지 실제로 실행될 경우 회사가 지금까지 내놓은 설명이 되레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달 넘게 결정된 것이 없다고 강조해왔는데, 이후 시장에서 예상한 수순대로 거래가 진행되면 정말 백지상태에서 여러 선택지를 저울질했던 게 맞느냐는 의문이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이럴 거면 그간 왜 속 시원히 말하지 않았느냐고 이중, 삼중으로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