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전쟁에 탄소배출권 가격 급락...천연가스값과 '디커플링'
입력 2022.03.02 07:00|수정 2022.03.02 09:27
    전쟁 발발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 하루만에 51% 급등
    천연가스에 비례하던 유럽 탄소배출권은 8.1% 하락
    홀로 상승세던 국내 탄소배출권 ETF도 장중 6%대 ↓
    “경제성장률 둔화 및 생산량 꺾일 전망”…디커플링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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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천연가스 가격에 연동되던 탄소배출권 가격의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탄소배출권 가격은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같이 오르는 등 '커플링'(동조화)하는 경향이 컸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4일(현지시간) 이후, 급등한 천연가스 가격과 달리 탄소배출권의 가격은 크게 하락했다. 

      이른바 '디커플링'(비동조화)이 발생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성장률과 원자재 생산량이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매크로 경제 전망에 더 큰 영향을 받는 탄소배출권의 가격이 급락했다는 분석이다.

      24일(유럽 현지시간) 유럽 천연가스 가격의 기준이 되는 네덜란드 TTF 거래소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메가와트시(MWh)당 134.3유로를 기록했다. 하루 만에 51.1%나 급등한 것이다. 25일 차익실현으로 하락세를 보였으나 1일 전날보다 23.4% 오른 MWh당 121.7유로를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전면전에 들어가면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러시아 제재로 천연가스 공급이 막히면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유럽에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당분간 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의 강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미 미국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건설 주관사를 제재하고 나섰다. 무디스는 “러시아는 유럽의 가장 큰 가스 공급국으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긴장이 고조될 경우 이미 몇 달간 급등한 가스 도매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던 탄소배출권은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24일(유럽 현지시간) 올해 12월물 유럽연합(EU) 탄소배출권 선물(ICE EUA) 가격은 하루 만에 8.5% 떨어진 톤당 87유로를 기록했다. 연이은 하락세를 보이더니 지난 1일에는 하루만에16.2% 급락해 톤당 68.6유로에 마감했다.

      이에 따라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지수에 투자하는 국내 탄소배출권 ETF(상장지수펀드)도 일제히 내림세를 기록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ETF 수익률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과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S&P(H)’은 전면전이 가시화된 24일 모두 6% 넘게 하락했다. 2일 현재 17% 넘게 급락하며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 앞으로는 천연가스 가격과 탄소배출량의 가격이 더 이상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우려로 국제 유가가 뛰면 탄소배출권도 상승 동력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원유가격도 급등한 상황에 천연가스가 부족한 유럽발전소들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지만 탄소배출량이 많은 석탄 연료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어서다. 

      천연가스와 탄소배출권의 디커플링이 심화된 데에는 유럽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크게 늘고 천연가스와 석탄의 가격차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 박영훈 연구원은 “연초부터 2월 19일까지 EU 가스 소비량은 전년 동기 대비 32.1% 감소했다”며 “지난 1월에는 바람도 잘 불고 일조량이 높아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각각 전년보다 23.1%, 50.8% 늘었다”고 말했다. 유럽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늘면서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가 한풀 꺾였다는 분석이다. 

      증권사의 원자재 담당 연구원은 “석탄도 24일 하루만 23.4% 오르며 천연가스와 함께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탄소배출권은 석탄과 천연가스 가격의 괴리에서 발생하는데, 두 연료의 가격이 크지 않으면 탄소배출권 가격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천연가스가 석탄보다 비싸면 석탄을 많이 쓰게 될 테니 탄소배출권 가격이 올라가는데, 두 연료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탄소배출권까지 사면서 석탄을 사용할 유인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더라도 탄소배출권 가격이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쟁이 가시화되면서 경제성장률 자체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에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4%로 내다봤지만 3.8%로 낮췄다. 

      이 연구원은 “탄소배출권은 에너지 가격보다 에너지 소모량에 더 큰 영향을 받는데 전쟁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올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지 않다”며 “앞으로는 천연가스와 탄소배출권이 비례했던 추세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