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OTT '고밸류 랠리' 출발선 끊은 티빙…후발주자 시즌·웨이브는?
입력 2022.03.02 07:00
    티빙 '속전속결' 투자로 2500억 실탄확보
    KT의 시즌이 1兆 이상?…눈높이 고공행진
    출혈경쟁 가속화…"확장 전략 구체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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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CJ ENM의 OTT(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 자회사 티빙(TVING)이 대규모 투자유치에서 2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티빙을 시작으로 SK텔레콤의 웨이브(wavve), KT의 시즌(seezn) 등 경쟁사들도 ‘고밸류 행진’을 이어갈 지 주목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내 OTT의 높아진 눈높이만큼 추가 성장성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티빙은 투자 확대를 위해 2500억원 규모의 외부투자를 유치를 완료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발행되는 신주 38만2513주 전량은 재무적투자자(FI)인 JCGI(JC Growth Investment)가 설립하는 특수목적회사(미디어그로쓰캐피탈제1호 주식회사)가 인수할 예정이다.

      투자규모는 예상된 바고, 가파르게 부풀어 오른 기업가치가 눈길을 끌었다. 이번 투자유치 후 기준 티빙의 기업가치는 약 2조원이다. 지난해 7월 네이버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상증자 직후의 약 3500억원과 비교하면 7개월만에 약 6배가 늘어난 수치다. 앞서 지난해 1월 JTBC스튜디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당시 티빙의 기업가치는 약 300억원 수준이었다. 

      티빙 측은 “기업가치가 이처럼 단기간에 급등한 것은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운 가입자 증대, 국내 굴지 사업파트너와의 제휴, 글로벌 진출 계획 구체화 등 티빙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밝혔다.

      지난해 시장에서는 티빙의 눈높이를 맞추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거론되는 1조5000억~2조원이 사업 모델과 경쟁 환경 등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수치라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 투자 논의 과정에서 예비적격후보(숏리스트)의 투자자들과 티빙 측의 기업가치 간극이 컸다고 전해진다. 

      이번 거래는 랜드마크 딜(deal)이 필요한 JCGI 측과 빠른 자금수혈이 필요한 티빙 측의 니즈가 맞은 것으로 파악된다. JCGI는 작년 8월 설립된 신생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JC파트너스가 지분 50%를 갖고 있다. JCGI는 작년 10월 티빙이 주관사 노무라금융투자를 통해 진행한 예비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티빙 측과 집적 접촉하며 준비를 했고, 이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투자 일정과 기업가치 눈높이에서 CJ그룹과 합의가 빨랐다고 전해진다. 

      KT의 OTT 계열사인 ‘시즌’도 최대 2000억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추진 중이다. 시즌은 지난해 KT스튜디오지니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그룹 내 콘텐츠 사업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다. 시즌 측은 연초 잠재 FI들을 대상으로 IM(투자설명서)을 배포하며 본격적인 실탄 확보에 나섰다. 시즌 측은 투자받은 자금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IP(지식재산권) 확보에 사용할 계획이다. 

      시즌이 시장과의 눈높이 조율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T 측은 최대 1조~1조5000억원 수준의 밸류를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시즌의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이 티빙 등 타 국내 OTT 기업과 비교했을 때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투자자들에게 경쟁력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티빙의 경우 지난해 빠른 성장을 보이며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다. ‘환승연애’, ‘술꾼도시여자들’, ‘여고추리반’ 등 티빙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었고 ‘스트리트우먼파이터’ 등 CJ ENM 산하의 프로도 화제성이 높았다. 콘텐츠의 인기는 숫자에도 반영됐다. 본격 투자가 시작된 2020년말 이후 1년여 동안 티빙의 유료가입자가 3배가량 증가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0만명을 넘었다. MAU(월간활성이용자)도 지난 1월 418만8000명 수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서도 시즌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뒤늦게 시장에 뛰어 든 쿠팡플레이는 독점 공개한 SNL코리아 시리즈 등이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동안 앱 사용자 수가 5배 이상 급증했다. 오리지널 외에도 해외리그 중계, 콘서트 스트리밍 등 스포츠와 음악 분야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점이 성과를 봤다.

      한편 이용자수 기준 국내 OTT 1위인 웨이브는 티빙이 턱밑까지 쫓아오며 긴장감이 올랐다. 웨이브 측은 지난해부터 외부 투자 유치 논의를 하고 있단 입장이다. 다만 티빙이 2조원의 고밸류를 인정받은 이상 기간이 늦어질수록 웨이브 측의 눈높이가 더 높아지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또 다른 토종 OTT인 왓챠도 기업가치와 관련된 이슈가 예상된다. 왓챠는 지난해부터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작업을 진행 중인데, 지난해 하반기 기준 약 3000억원의 밸류가 거론됐다. 약 1년 전인 2020년 12월 투자를 받았을 때 기업가치인 약 1200억원에서 두 배 이상 뛴 규모다. 시장에선 왓챠 측이 원하는 밸류가 5000억원 규모란 말도 나온 바 있다. 왓챠는 최근 글로벌 진출 관련 자금 조달을 위해 연내 IPO(기업공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고 협의 중이다.  

      시장에선 국내 OTT들의 기업가치 급상승이 과도한 부풀리기라는 의견도 적지않다. 국내 OTT들이 성과를 이제 막 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체 시장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사가 독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압도적이다. 성장에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가 필수지만 콘텐츠 사업 특성상 실제 수익성까지 이어질 지 장담할 수 없고 시간도 걸린다. 티빙도 지난해 3분기까지 순손실 417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OTT들의 기업가치와 실적 간 괴리가 더 벌어진다면 엑시트(투자금 회수) 전략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조 단위 밸류가 ‘고밸류’로 남지 않으려면 추가 성장전략이 필수다. OTT도 다른 플랫폼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확장성’이 관건이다. 유료 가입자수를 계속 늘려야 하기 때문에 해외 진출도 숙제다. 티빙은 2023년까지 일본, 대만, 미국 등 주요 국가에 직접 서비스 론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OTT 시장은 국내보다 더 경쟁 강도가 높기 때문에 국내 OTT가 어떤 전략으로 해외 진출을 할 지 주목되고 있다. 왓챠가 2020년 일본에 진출하면서 국내 OTT 중에서는 처음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해외 사업자를 배척하는 시장 분위기에 초기 진입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한 금융투자(IB)업계 관계자는 “티빙이 인정받은 2조원 밸류는 CJ ENM 시총이 약 2조8000억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다”며 “콘텐츠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건 맞지만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지면서 이미 레드오션이기도 하고, 각 사마다 역량도 크게 차이가 난다. 국내 시장도 '누가 살아남을지'는 앞으로 3년이 관건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