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OTT '고밸류 랠리' 시동 걸지만…콘텐츠 업계선 "K드라마 위기"
입력 2022.04.29 07:00
    취재노트
    '넷플릭스 쇼크'로 성장 한계 드러났단 평
    대규모 투자·매출 목표 발표하는 韓 OTT들
    급상승한 몸값만큼 기대 충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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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 1위인 넷플릭스의 추락으로 콘텐츠 업계 전반이 ‘넷플릭스 쇼크’에 빠졌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유료 구독자가 줄면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 넷플릭스 주가는 장중 최대 39%까지 폭락했다. 블룸버그는 이날을 “넷플릭스 창립 이후 최악의 날”이라고 평했다. 

      같은날 디즈니, 로쿠,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 등 미국 증시의 다른 스트리밍 업체들의 주가도 동반하락세를 보였다. 국내 대표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도 힘이 빠졌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은 장중 6%까지 떨어졌다. 제이콘텐트리, 에이스토리, 초록뱀미디어, 위지윅스튜디오 등의 주가도 하락세를 보였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 업체인 래몽래인, 스튜디오산타클로스, 버킷스튜디오, 코퍼스코리아 등도 3% 하락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성장주의 한계’, ‘플랫폼 비대면 수혜 끝’ 등 다양한 평이 나온다. 상징적인 측면이 크다보니 국내 콘텐츠 업계도 긴장감이 오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무섭게 오른 ‘K콘텐츠’ 기대감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공격적인 투자였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연이어 ‘미디어데이’를 열고 ‘희망 가득한’ 콘텐츠 사업 청사진을 발표하고 있다. 1~2년간의 전열 정비를 마치고, 이제 실탄을 장전 후 ‘달려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달 19일 JTBC스튜디오는 ‘SLL 미디어데이’를 열고 새 콘텐츠 비전을 발표했다. JTBC스튜디오는 ‘SLL(Studio LuluLala)’로 사명을 바꾸고 앞으로 3년간 3조원을 투자하고 2024년까지 매출 2조원을 달성하는 글로벌 톱티어 콘텐츠 제작사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서 7일에는 KT가 ‘KT그룹 미디어데이’를 열고 그룹의 콘텐츠 사업 성장 전략을 밝혔다. 2025년까지 그룹의 ‘미디어 및 콘텐츠 매출 5조원’ 목표와 함께 올해부터 3년간 5000억원을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KT그룹은 자체 OTT인 '시즌(seezn)'을 중심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나서고 있다.

      CJ ENM은 5일 새로운 콘텐츠 스튜디오인 ‘CJ ENM스튜디오스’ 신설을 공식화하고 K-콘텐츠 양산을 위한 멀티스튜디오 시스템 구축을 본격화했다. CJ ENM은 해당 스튜디오가 국내외 OTT 플랫폼 타깃의 멀티 장르 콘텐츠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앞다투어 조단위 투자금과 매출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그만큼 몸값 ‘눈높이’도 가파르게 올랐다. CJ ENM의 OTT 자회사인 티빙(TVING)은 3월 2500억원의 외부투자를 유치하면서 2조원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1월 300억원 수준이었더 기업가치는 7월 3500억원, 올해 3월 2조원으로 빠르게 뛰었다. KT는 CJ ENM으로부터의 1000억원 ‘협력 보증금’을 투자 받으면서 KT스튜디오지니가 설립 1년만에 기업가치 1조원을 달성했다고 ‘셀프’ 발표했다. 

      왓챠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 약 3000억원의 밸류가 거론됐는데 약 1년 전 1200억원에서 두 배 이상 뛴 규모였다. 회사측이 ‘원한’ 밸류는 훨씬 높았다는 말도 나온 바 있다. SK스퀘어의 웨이브(콘텐츠웨이브)는 SK쉴더스, 원스토어, 11번가 등 상장을 예고한 다른 계열사들의 상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후발주자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콘텐츠 시장이 급격히 성장한건 맞지만 그만큼 높아진 눈높이를 시장이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넷플릭스 구독자 감소에 대해 “OTT 시장이 포화 상태가 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넷플릭스는 코로나 특수 속에 2020년 사상 첫 가입자 2억명 시대를 열었지만, 늘어난 글로벌 OTT 경쟁자와 엔데믹 상황 및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며 성장세가 둔화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오징어게임’ 이후 글로벌에서 ‘메가 히트’를 치는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점도 크다. 

      19일 열린 SLL의 미디어데이에서 SLL 경영진과 주요 드라마·영화 제작사 대표가 콘텐츠 시장의 현안과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간담회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에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단축됐다”, “글로벌 OTT로 전세계에 한국 작품이 유통되고 있다”며 달라진 K콘텐츠의 위상을 체감한다면서도 “콘텐츠의 휘발성이 강해졌다”, “변화가 너무 빨라서 큰 해일이 앞에 있는 것 같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경문 SLL 대표는 미디어데이에서 “모두가 K드라마를 얘기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지만, 솔직히 K드라마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있다”며 “동남아 시장에선 중국, 인도, 터키, 일본이 저가공세 하면서 시장을 잠식해나가고 있다. ‘K드라마’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역 거점들을 계속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SLL로 사명을 변경하고 레이블 형태의 밸류체인을 구축한 것도 ‘기존의 사업모델은 절대 안된다’는 우려에서라고 설명했다. 

      OTT 및 콘텐츠업계가 성장성 측면에서 떠오르는 ‘노다지’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성공’ 전망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투자자들의 시각도 많아졌다. 이르면 연내 IPO(기업공개)를 예고한 왓챠에도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분위기다. 한때 우르르 ‘투자 붐’이 있었지만 여전한 수익성 침체로 투자자들의 엑시트(투자 회수) 고민이 한창인 이커머스 업계 상황을 빗대는 이들도 있다. 

      한 글로벌 OTT 관계자는 “결국 콘텐츠 비즈니스란게 성장 궤도에 들기까지 쉽지 않다”며 “이제 외사냐, 토종이냐 비교는 무의미하다. 국내사들도 투자를 많이 하는데 투자가 ‘어디로’ 가느냐는 회사가 어떻게 콘텐츠를 접근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SKT의 경우 웨이브를 IT회사처럼 돌리고, 애플은 콘텐츠 결정도 무조건 쿠퍼티노(미국 본사)에서 한다. 경쟁이 세지고 있지만 누가 더 성장할지는 결국 어떤 색깔을 가지고 끌고 가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