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올운용 美 기차역 대체투자 부실 위기...법적 공방 우려에 국내 기관 '긴장'
입력 2022.08.19 07:00
    2018년 유니언스테이션 1000억 메자닌 투자
    코로나19로 디폴트 나며 경매 회부 1차 위기
    국내 기관들의 출자 전환으로 위기 넘겼지만
    미국 암트랙의 강제 수용권 발동으로 2차 위기
    마켓 밸류(시가)에 넘기기 위한 법적 분쟁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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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한 미국 기차역 유니언스테이션 투자 건이 자칫 손실을 볼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철도 공공기관 암트랙이 강제수용(Eminent Domain) 권리를 주장하며 시가에 크게 못 미치는 가격을 제시하면서다. 

      다올자산운용은 현재 미국 현지 로펌을 통해 암트랙에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만약 적정 가격에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규모 손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해당 투자 건을 주도한 국내 운용사 다올자산운용과 교보생명 등 국내 기관투자자 간 책임 공방이 불거질 수 있다. 

      지난 2018년 다올자산운용(당시 KTB자산운용)은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기차역 및 복합문화공간 ‘유니언스테이션’ 대출채권에 약 1000억원 규모로 투자했다. 투자기간은 10년으로 당시 교보생명, 하나생명 등을 포함한 금융사 세 곳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유니언스테이션은 1907년 설립된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기차역으로 매년 4200만명이 넘는 수송객이 해당 역을 이용한다. 역과 함께 복합상가 및 문화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역 이용객 및 리테일 고객이 줄면서 디폴트 상태에 빠졌고 차주인 현지 부동산 개발회사 애쉬케나지 측이 대출 상환에 실패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작년 말 미국 최대 공모리츠 SL그린은 해당 자산의 선순위 채권을 인수, 특별 서비스회사(Special Servicer)의 지위를 얻었다. 특별 서비스업체란 특정 자산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시 부실채권의 회수와 처리를 담당하는 주체를 말한다. 해당 지위를 이용해 SL그린은 올해 1월 해당 부분에 대해 경매를 시도했다. 자칫 중순위 대출금을 모두 날릴 위기에 직면한 다올자산운용은 기존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설득, 약 3200억원 규모의 선순위 채권을 인수하는 캐피탈콜(자금납입요청)을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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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그러나 이번엔 미국 국영 철도회사 암트랙이 경매에 참여 의사를 밝히며 또 다른 암초를 만나게 됐다. 에미넌트 도메인(Eminent Domain;강제 수용권)을 통해 약 2500억원에 해당 자산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2018년 다올 측이 투자할 당시 해당 건의 자산 가치가 약 1조1000억, 코로나19 발발에 따른 하락으로 현재 시가가 약 7000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헐값에 매입하겠다는 셈이다. 

      에미넌트 도메인이란 강제수용 권한으로 미국 연방정부가 공공 사용을 목적으로 부동산 자산을획득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1900년대 초반 교통기관이나 개관시설, 대규모 공원 등을 조성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현재는 자연보호, 재난지역 복구, 범죄 소탕 등의 공공 목적 외에는 용례가 많지 않다. 

      현재 다올자산운용은 국내 법무법인 김앤장 및 미국 현지 로펌 메이어브라운 등을 선임하여 미국 암트랙의 강제수용 행위에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강제수용 행위 자체의 무효를 주장하는 방안과 강제수용 시 암트랙이 제시한 가격이 아닌, 시장가치(마켓밸류)에 근접한 금액으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대응을 준비 중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강제수용을 무효화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후자에 주력하고 있다. 

      다올자산운용 측은 암트랙이 제시한 가격보다는 웃도는 금액으로 협상을 마치는 데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법적 분쟁 시일이 다소 걸리더라도 코로나 발발로 일시적인 자산 가치 하락이 발생했던 만큼 장기적으론 가치가 다시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암트랙이 저가에 제시했던 가격을 계속해서 주장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앞선 미국의 강제수용 사례를 놓고 볼 때 처음 제안됐던 가격이 최종 협상가로 정해진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전언이다. 김앤장에 따르면 미국 현지 강제수용 사례 중 암트랙이 첫 제시했던 금액의 2배~5배를 웃도는 금액에 수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유니언스테이션은 공공기관 내 상업시설이 포함되어 있는 만큼 시가로 밸류를 정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의견이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김앤장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암트랙이 강제수용 권한을 주장하며 제시한 가격은 시장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금액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며 “정확한 감정평가를 진행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데다 다올 측이 제공해야만 볼 수 있었던 자료도 요청하지 않았다. (암트랙과) 가격 협상 결과에 따라 법적 분쟁 시일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적 분쟁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 투자 손실 가능성이 불거진 만큼 향후 국내 운용사 및 투자자 사이의 책임 공방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해당 사건이 해외 투자 건 가운데 특수한 사례로 꼽히는 만큼 이를 둘러싼 업계의 의견도 엇갈린다. 

      투자업계에서는 강제수용 시나리오를 다올자산운용 측이 미리 검토하고 예비 수익자에 이를 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미국 강제수용 사례가 2000년대 들어 불과 몇 건에 그친 데다 상업시설을 포함한 기관의 강제수용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강제수용 권한은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등 유럽에서도 철도 등 교통이나 인프라 관련 투자 건에 조항으로 들어가 있는 사례를 본 적이 있다”라며 “다만 교통기관 내에 리테일 상가 투자사례가 많지는 않은 만큼 일반적인 케이스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부실 자산 문제가 벌어졌을 때 도의적 또는 법적 책임을 논하는 기준은 다시 돌아갔을 때 투자를 할지 여부를 따져보면 된다”라며 “유니언스테이션 건은 초기 투자 당시 설령 강제수용 시나리오를 면밀히 검토했다고 하더라도 미국 공공기관이 중순위 대출을 커버하지 못할 정도의 가격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와 강제수용이라는 두 가지 이벤트가 겹쳐서 발생한 건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운용사 측의 실수를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2018년 첫 메자닌 대출 투자를 진행할 당시는 아니더라도, 올해 초 선순위 채권을 인수할 당시에는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투자자가 미국 자산의 디폴트 상황에서 선순위 채권을 인수했던 사례가 많지 않았던 만큼 정황을 더 파악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설령 임차인이 10년 장기계약을 해 안정적인 투자 건이라 하더라도 이중 체크를 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강제수용 조항이 계약서 상에 있었더라도 잠재적 투자자에 이를 부각해서 고지를 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리스크 체크에 대한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