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진정 안될수도..." 엄습하는 빅플립(big-flip)의 공포, 머뭇대는 증시
입력 2023.02.16 07:00
    1월 美 소비지수 전년대비 6.4% 상승...'예상 상회'
    인플레이션 진정되고 금리인상 멈출 거란 전망 깨져
    증시는 보합이라지만 '눈치보며 급등락 거듭 종목장세'
    경계감에 증시 상단은 제약...AI 테마 타고 반도체 주목
    • '상저하고'라더니 막상 '상고하저'였고, '골디락스'(이상적인 균형의 경기 상황)라더니 한 달 만에 '빅플립'(big-flip;대전환)의 공포가 찾아왔다. 경기 관련 수치 하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인사들의 발언 하나에 시장은 격렬하게 출렁대고 있다. 갈 곳 잃은 증시는 시원하게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고, 시중 유동성은 아직 충분하다보니 이슈나 테마에 따라 급등과 급락, 순환매를 반복하는 종목장세가 펼쳐지고 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빅플립의 가능성이 서서히 회자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금리와 경기 전망은 ▲ 2023년 상반기 중 전세계적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 3월을 끝으로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도 멈추며 ▲ 경기는 다소 충격을 받고 ▲ 경기 회복을 위해 올해 연말~내년 상반기 사이엔 다시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빅플립은 이런 전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제시됐다. 일단 인플레이션 진화가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14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런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1월 CPI 전년대비 상승치는 6.4%로 시장 전망 6.2%를 웃돌았다. 식료품과 에너지 등 가격 변화가 심한 품목을 제외한 근원 CPI는 5.6%로 역시 예상을 0.1%포인트 높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기름 및 중고차 가격이 지난해 12월 바닥을 찍고 올 1월 상승 전환한데다, 주택 및 주거비 가중치가 커지며 벌어진 일이다.

      '물가의 역습'이 예상되며 미국 기준금리 전망 역시 요동치고 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시장 참가자 예측치 기준 3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제도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은 현재 0%로 소멸했다. 불과 지난달 말 까지만 해도 동결 전망이 14%에 달했다. 대신 0%였던 50bp(0.5%포인트) 인상 확률이 9.2%로 상승했다. CPI 발표 후 연준 인사들도 '이번 데이터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지지한다'는 등 다소 매파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을 내놨다.

      당초 시장은 미국 연준이 1월 기준금리를 25bp 올리고, 3월 동결하며 금리 인상 사이클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금은 5월 FOMC에서도 기준금리를 인상될 가능성에 시장 참여자들이 베팅하고 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5월 FOMC 기준 금리 동결 기대는 58.9%에서 18.4%로 크게 내렸고, 25bp 인상 기대는 30%에서 74.2%로 크게 올랐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예상보다 뜨거웠던 고용 상황,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서비스업 지수의 깜짝 턴어라운드(상승 전환) 등으로 인해 시장 참여자들은 미국 기준금리가 더 높게 더 오래 지속될 것이란 우려를 자산의 가격에 반영시키기 시작했다"며 "만약 미국 기준금리가 5%를 넘어간다면 한국은행 역시 3.75%나 그 이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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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 하반기 고점을 찍은 후 잡혀가는 줄 알았던 인플레이션 '역습'의 배경은 복잡하다는 평가다. 생각보다 견조한 성장이 계속되며 경기 경착륙 우려가 후퇴한데다, 고용 시장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일거에 해지하고 전면적인 경제활동에 나서며 글로벌 시장에 수요를 증폭시키는 요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매크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시장의 표정은 아리송하다. 예상보다 높은 수준이었던 1월 CPI와 이에 따른 미국 연준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에도 14일 미국 증시는 장중 급등락을 반복한 끝에 보합권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미국채 6개월물은 처음으로 5%를 넘겼지만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히려 떨어졌고 달러 지수도 약보합세였다.

      증시가 큰 충격을 받지 않은 배경에 대해 유진투자증권은 "주택 물가가 조만간 떨어지기 시작하면 결국 물가는 더 빨리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유효하다"며 "5%가 넘는 기준금리는 충분히 인플레를 통제할 수 있는 제약적 수준으로, 기준금리 인상 기간이 길수록 물가나 경기 모두 다시 내려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물론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게 1월의 급등장이 계속 이어질거란 의미는 아니라는 평가다. 골디락스와 빅플립이라는 상반된 전망이 주요 경제 지표 발표 일정에 따라 단기간에 오락가락 하고 있는 현 상황이 정상적인 증시라고 보긴 어려워서다. 기준금리가 이전보다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지속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증시 상단은 제약되고, 산업군별로 이슈를 따라가는 종목 장세가 펼쳐질거란 전망이 좀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국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반도체다. 14일 예상보다 높았던 CPI에도 나스닥이 상승 마감할 수 있었던 건 반도체ㆍ클라우드 업종 주가가 급등한 덕분이다. 신영증권은 "인공지능 관련 투자 확대 분위기가 봇물을 이루다보니 '성장주'가 아닌 '반도체'를 사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표현했다.

      하이투자증권 역시 "향후 답은 반도체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밸류에이션 부담이 있다지만 반도체는 어차피 한참 후 미래의 EPS(주당 수익)를 보는 업종"이라며 "마침 챗GPT 등 새로운 테마가 등장했고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한다니 반도체 수요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