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산파 자처한 중기부, 질적 고민 뒷전ㆍ치적 홍보 급급
입력 19.12.12 07:00|수정 19.12.13 09:15
장관이 나서 11번째 유니콘 등극 발표
세계 5위 올랐다는데 업계 반응은 싸늘
생태계는 척박한데 정부는 자금만 관심
“장관이 연예인”…전시행정 비판 목소리도
  • 우리나라에 열 한번 째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이 탄생했다. 올해만 다섯 번째 맞는 경사인데 벤처업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정부가 유니콘의 수에만 집작하다 보니 그 기업이 창출해야 할 부가가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머니게임’으로 유니콘을 찍어내는 데는 급급할 뿐 정작 그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정부는 바이오시밀러 업체 에이프로젠이 우리나라에서 11번째 유니콘기업으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국가별 유니콘 기업 순위가 5위로 올랐다고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직접 연단에 섰다.

    정부는 앞으로도 벤처투자 확대와 예비 유니콘 발굴·육성에 힘쓰겠다고 했다. 한껏 고무된 정부와 달리 벤처업계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치적 알리기’로 평가절하하며 별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 정부는 올해만 다섯 번째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다며 어깨에 힘을 줬다. 그러나 이는 최근 전통 산업의 위축과 신산업에 대한 투자 욕구가 결합된 면이 크다. 올해 유니콘에 등극한 기업 면면만 봐도 짧게는 창업 8년, 길게는 스무 해를 맞는 곳들이다. 유니콘의 정의를 ‘급격히 성장한 스타트업’으로 좁히면 이에 해당하지 않는 곳이 많다.

    유니콘 기업의 실질을 가려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니콘은 가치평가의 기준을 찾기 어렵다. 서로 지분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올려받은 경우도 있다. 일단 유니콘에 등극하면 별다른 사건이 없는 한 지위를 유지한다. 옥석이야 어디든 있겠지만 11곳이라는 숫자에 함몰되면 안된다는 의미다. 상당 부분 ‘국내 서비스업’에 치중돼 있다는 점도 의미를 줄이는 요인이다.

    유니콘은 단순히 그 기업 가치의 크기로만 평가받지 않는다. 그 기업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도 중요하다.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 단순히 규모가 커지고, 영업이 잘 된다고 높은 평가를 주긴 어렵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니콘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배달기사처럼 비용이 낮고 접근이 쉬운 고용만 창출하거나, 후속 기업의 시장 진입 진출 자체를 막는 폐단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유니콘 탄생으로 벤처 시장이 커진다지만 긍정적인 가치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유니콘이 성장할 생태계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니콘의 탄생은 좋은 아이디어와 소비자의 선택, 소비자 삶의 질 개선 그리고 자금의 유입이라는 가치사슬 속에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규제의 벽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이 한국에 오면 70%는 불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계는 매번 규제 완화를 원하는데 정부의 화답은 더디다.

    규제가 많아선 시장이 커질 수 없다. 정부는 척박한 토양에서 유니콘이 많이 탄생하길 원한다. 이 때문에 시장은 ‘머니게임’ 양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몇몇 규제를 피한 기업들은 돈의 힘에 밀려 자의반 타의반 유니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벤처 업계의 유동성 과잉 지적은 몇 해째 이어지고 있다.

    유니콘 탄생은 올해 정부의 핵심 화두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초 “우리나라 유니콘이 6곳이며 5개 정도는 유니콘 기업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해를 넘기기 전에 희망이 현실화했다. 정부는 이미 유니콘 수준이지만 등재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기업도 한 두개 더 있다고 밝혀, 추가적인 성과를 예고했다.

    정부의 '전시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영선 장관은 중기부 취임 당시 벤처업계의 기대를 많이 받았다. 중소·벤처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무엇보다 ‘실세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기부의 위상은 높아졌고, 박 장관도 기회가 될 때마다 벤처업계에 관심을 보였다. 예비유니콘 특별보증 제도를 도입하고, 유니콘기업 육성 토크 콘서트를 열었으며, 청년 창업자들과 치맥 회동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벤처업계에선 점차 중기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모습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업계 발전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유니콘이 탄생할 때마다 공을 과시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사장된 투자에 대한 책임은 결국 벤처캐피탈(VC)들이 져야 한다. 과거 벤처 거품이 꺼질 때도 정부는 화살을 피했다. ‘스타 정치인’ 장관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지난 중기부 장관은 너무 학자였다면 이번엔 너무 연예인인 것 같다”며 “유니콘 성장 토대는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장관은 상주고 구호만 외치는 전시행정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