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우선순위' 정한 SK스퀘어…FI에 갚아야 할 돈만 조 단위
입력 25.05.27 07:00
하이닉스 제외 전면 재편
FI 옵션 조건 해소가 관건
IPO 실패로 부담 가중돼
저가라도 매각 전략 택해
  • SK스퀘어가 포트폴리오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 자회사인 하이닉스를 제외한 비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내부 청산 우선순위를 매기고 있으며, FI(재무적 투자자)와의 정산을 포함한 구조조정 방안도 논의 선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IB(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최근 주요 포트폴리오 중 11번가를 정리 우선순위 1순위로 설정하고, 티맵모빌리티와 원스토어를 그다음 순번에 배치하는 기조를 내부적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1번가는 연내 매각을 목표로 한 작업이 이미 착수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배경엔 조 단위에 이르는 FI 관련 옵션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11번가,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등에는 각기 FI가 얽혀 있으며, 이들과 약정한 내부수익률(IRR)은 최대 두 자릿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IPO 실패 시 SK 측이 콜옵션을 행사해 원금과 수익을 정산하는 구조다. 투자업계에서는 SK스퀘어가 일정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FI와의 정산을 우선 마무리 짓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본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SK스퀘어가 내부적으로는 '하이닉스를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정리하자'는 판단을 이미 끝냈다"며 "FI에 지급해야 할 이자와 원금 규모가 상당하다 보니, 이제는 속도전 양상으로 전환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매각 대상에 오른 11번가는 현재 국민연금과 H&Q코리아 등 FI가 포함된 대규모 컨소시엄 구조다. 단순한 매각만으로는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고, FI에 대한 수익 정산을 포함한 구조적 해결책이 동반돼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11번가에 투입된 FI의 원리금 기준 회수선(최저 보장 기준선)을 약 5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수 주체가 이만큼의 정산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정산 조건은 과거 오아시스마켓의 인수 시도에서도 주요 걸림돌로 작용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커머스 기능을 강화하려던 오아시스가 11번가와의 시너지를 검토하며 진지하게 M&A를 추진했으나, 국민연금이 포함된 FI 구조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며 "지금 시점에 플랫폼 기업에 5000억원 넘는 에쿼티를 써줄 수 있는 인수자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 이로 인해 SK스퀘어는 'FI 정산'을 핵심 축으로 한 포트폴리오 구조조정 전략을 세우고, 주요 자회사에 대한 매각 가능성을 전방위적으로 열어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과 공동 투자했던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의 소수지분도 매각 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리벨리온의 기술 경쟁력이 동종업계 경쟁사인 퓨리오사AI 대비 떨어진다는 내부 평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FI 이익 보장을 전제로 한 정산 구조도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11번가,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등 주요 자회사에 얽힌 FI는 대부분 우선이익과 이자를 보장받는 구조다. SK스퀘어 입장에서는 밸류를 낮춰서라도 매각을 단행한 뒤, FI에 대한 정산이 완료된 시점에서야 최종 손실을 인식하게 되는 셈이다. 자연히 빠른 매각이 전략의 우선순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SK스퀘어의 고민은 '얼마에 팔 수 있느냐'보다 'FI에게 언제 얼마를 정산해줄 수 있느냐'에 가깝다"며 "FI에 얹어줄 이자 계산이 먼저고, 이후 손실을 일부 감수하더라도 철수하는 게 기본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SK스퀘어 측은 "현재 전체 포트폴리오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를 진행하고 있지만 11번가 외에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재계 안팎에선 올해 안에 적어도 11번가 매각 가시화를 목표로 한 일정이 내부적으로 잡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피투자사의 IRR 정산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SK스퀘어가 속도 조절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FI와의 옵션 조건을 다시 협상해 매각 구조를 바꿔보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11번가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 이후론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SK그룹이 현재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구조조정 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