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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최근 유상증자 중점심사 제도를 도입하고 관련 심사 기조를 강화하면서, 자금 조달을 준비 중인 발행사는 물론 이를 지원하는 증권사 모두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모 규모가 크거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일부 기업에만 적용되던 '중점심사'가 최근에는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대부분의 기업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25일 복수의 IB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금감원의 유상증자 심사는 일정 기준을 넘어 사실상 모든 발행사를 대상으로 '현미경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증권업계에서는 중점심사 대상이 전체 유상증자 신청 기업 중 기존 10~20% 수준에서 최근에는 70~80%까지 확대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재무 구조가 양호하고, 대내외 리스크가 뚜렷하지 않은 기업들조차 예외 없이 중점심사 대상으로 지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코스피 상장사는 재무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었음에도 중점심사 대상에 포함됐다. 주관사조차 해당 기업이 지정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러워했다. 업계에서는 유상증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금감원이 기업별 특성보다는 심사 일관성과 공정성을 우선하는 기조로 전환한 결과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심사 강도 자체도 과거에 비해 한층 강화됐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로 인해 일정 지연이나 증자 철회를 고민하는 기업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금감원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한 8개 상장사 가운데 진원생명과학, 이오플로우, 금양, 고려아연 등 4곳은 유상증자를 철회했고, 이수페타시스는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매입 직후 일반공모 유증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려다 여론과 감독당국의 압박 속에 발을 뗐다.
이처럼 유상증자에 대한 당국의 경계심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최근 국내 대형 상장사들의 연이은 조(兆) 단위 증자 발표가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SDI(약 1조7000억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약 2조9000억원), 포스코퓨처엠(약 1조1000억원) 등 올해에만 8조원이 넘는 대규모 유상증자가 쏟아지면서, 주가 하락을 경험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유상증자 심사 강화는 투자자 보호와 공시 정확성 제고라는 정책적 필요에 따른 조치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주주들의 유상증자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만큼, 증권신고서에 자금 사용 목적과 추진 배경이 보다 명확히 담길 필요가 있어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심사 기준이 예전보다 엄격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기업의 경영 활동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유상증자 중점심사 제도에서 ▲주식 가치 희석 가능성 ▲일반주주 권익 훼손 ▲경영권 분쟁 ▲재무위험 과다 ▲주관사의 주의의무 소홀 등 7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심사 대상을 선정한다. 중점심사 대상이 될 경우, 유상증자의 당위성과 필요성, 주주 소통 절차, 이사회 논의 내용, 실사 자료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수반된다.
금감원은 대규모 증자나 이슈성 항목의 경우 개별 사안별 검토도 가능하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인 심사 기준은 심사 회피 및 사전 조율 가능성을 우려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제도 운영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되, 시장과의 소통을 지속하며 절차적 보완 여지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는 제도의 근본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지만, 적용 방식과 심사 범위에 대해서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유상증자는 상법과 자본시장법상 일정한 규제를 따르는 합법적 자금조달 수단인데, 정성적 판단 기준이 반복되면 사실상 유상증자가 인허가제처럼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자율 규제를 중시하는 미국과 일본은 공시 중심의 사후 규제를 택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감독당국의 사전 심사 재량이 비교적 넓은 편으로, 이는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실효성 있는 선별 심사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무분별한 증자 남발을 막는 장치는 분명 필요하지만,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정량적인 기준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투자자 보호' 명분 유상증자 심사 기준 강화…'현미경 심사' 기조
대내외 리스크 없는 발행사도 '중점심사' 대상 포함돼 업계서도 '당혹'
'과도한 개입'vs'시장 신뢰 제고'…"심사 기준 투명성·예측 가능성 제고 필요"
대내외 리스크 없는 발행사도 '중점심사' 대상 포함돼 업계서도 '당혹'
'과도한 개입'vs'시장 신뢰 제고'…"심사 기준 투명성·예측 가능성 제고 필요"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2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