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적 불황으로 비상 경영을 선포했던 SK이노베이션이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연말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닌 연중에 CEO를 바꿨다는 점에서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 수장 교체라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CEO 교체를 계기로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상황 정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8일 이사회를 열어 추형욱 대표이사와 장용호 총괄사장 선임 안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장용호 SK㈜ 대표는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을 겸해 SK이노베이션의 사업 전반을 관장하고, 추 사장은 SK이노베이션 대표로 SK이노베이션과 E&S 사업 시너지를 가속화한다.
지난 2023년 말 인사에서 총괄사장 자리에 오른 박상규 대표는 이례적으로 취임 후 불과 1년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물러나게 됐다. 박 대표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교체 배경을 두고 여러 추측이 오간다. 합병 작업에도 부채비율이 치솟고 실적까지 빠진 시점이라 문책성 인사로 보인다는 얘기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SK E&S와 합병하며, 자산 105조원 규모 아시아·태평양 최대 민간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재출범했다. 합병 효과로 인해 지난해 4분기 영업 흑자를 기록했으나, 1개 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서는 등 실적 개선에 한계가 따랐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석유화학, 정유, 배터리 등 주력 사업 침체가 길어지면서다.
차입 부담도 지속해서 늘어나며 관리가 시급해진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총차입금은 49조324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순차입금은 32조8531억원에 달하며, 부채비율은 207%로 200%를 넘어섰다. 국제유가 하락세로 주력 사업장이 이제 막 적자에 들어선 것을 감안하면 2분기 이후 재무 불안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많다.
SK엔무브 기업공개(IPO) 작업이 불투명해진 한몫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 박 전 대표는 윤활기유 자회사 SK엔무브를 계열사 가운데 높은 실적을 꾸준히 유지하는 알짜 회사로 만든 공로로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직을 맡은 것으로 통한다. 지난해 회사 자금을 들여 SK엔무브 지분을 끌어올린 만큼 올해는 IPO를 마쳐 재무적투자자(FI) 회수 문제를 해소하고 구주매출로 신규자금을 유치하는 등의 과제가 주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 문제를 지적하며 제동이 걸렸다.
SK이노베이션으로선 들어올 돈은 사라지고 FI 회수보장 약속을 지키기 위한 웃돈만 얹어주게 된 상황이다. 현재 진행 중인 SK E&S의 액화천연가스(LNG) 밸류체인 유동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작업으로 분석된다.
투자업계 한 관게자는 "장용호 사장이 원래 지주에서 SK E&S의 LNG 잔여자산 유동화 작업을 맡다가 아예 SK이노베이션으로 내려와서 맡게 된 상황으로 보인다"라며 "LNG 유동화로 확보할 수 있는 예상 자금 규모가 IMM크레딧 등 FI들의 조기상환 비용과 맞먹는다. 시급해진 SK이노베이션의 재무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인사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임기가 당초 계획보다 길어질 전망과 함께 이후에도 비정기 원포인트 인사가 꾸준히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그룹은 작년 리밸런싱 과정에서 조직 안정을 위해 인사교체 폭과 속도를 조정하기도 했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0월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3곳의 CEO를 교체했다. 6년간 자리를 지켜온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도 물러났다. 차기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으로 거론된 인물이지만, 석유화학 사업 실적 부진으로 인적 쇄신 대상이 됐다.
SK이노베이션 계열 외에도 지난해 SK에코플랜트, SK스퀘어 수장이 7월과 8월에 각각 교체됐다. CEO가 바뀐 기업은 실적과 사업재조정(리밸런싱) 성과 부진을 보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창원 의장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정기인사 시즌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CEO가 교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박상규 대표, 취임 1년 만에 물러나
SK엔무브 IPO 작업 불투명해진 책임도 거론
"SK이노 재무상황 정리하기 위한 인사 가능성" 평가
SK엔무브 IPO 작업 불투명해진 책임도 거론
"SK이노 재무상황 정리하기 위한 인사 가능성" 평가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29일 11:5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