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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국내 최대 규모 해양 방산 전시회인 2025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5). 한국 최대 방산기업이 된 한화그룹의 김동관 부회장이 현장을 찾았다.
김 부회장은 국내외 군 및 방산업체 관계자와 해외 정부 대표단 등 100여명이 참석한 칵테일 리셉션에서 "한화는 국가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글로벌 사업환경에서 사업보국 창업정신을 깊이 되새기고 있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국격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벌가 3~4세 경영인의 대표격이 된 김동관 부회장이 사업보국을 직접 언급하며 국격의 제고를 강조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는 평들이 나온다.
사업보국(事業報國), 말 그대로 사업을 통해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한화그룹의 창업정신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삼성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그리고 한국 재계 창업주 대부분은 이를 창업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사업보국을 정주영 창업회장,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으로 이어지는 경영 철학으로 꼽는다.
롯데그룹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기업정신이 담긴 '기업보국'을 강조한다. 신 명예회장은 호텔산업을 성장시켜 국가에 보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관광보국(觀光報國)'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에 걸어두기도 했다고 한다.
한진그룹은 창업이념으로 '수송보국(輸送報國)'을 내세운다. 그룹이 어려울 때나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때도 어김없이 이를 앞세웠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철강을 산업의 쌀이라며 '제철보국(製鐵報國)'을 강조했다. 그로부터 몇십년이 지나 장인화 현 포스코 회장은 '소재보국(素材報國)'의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여러 이유들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표면상 '보국'은 기업이 단순히 장사를 해 이윤을 챙기는 것 너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ESG와도 맞닿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메시지도 어떠한 시기에 언급하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불러올 수 있다.
일례로 고려아연은 그들의 DNA(?)라며 '사업보국'을 강조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다툼 속에서 고려아연은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50년을 달려온 고려아연의 모든 구성원이 기업 생존을 위해 현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국익을 위한 전략광물 및 핵심소재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도와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내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에서 '보국'은 말그대로 감정의 호소다.
지금은 정치의 시간이다. 조기 대선을 통해 새정부가 출범하는 것도 며칠 안 남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폭을 맞춰야 하는 재계 입장에선 어느 장단을 준비해야 할 지가 지상 최대 과제다.
재계 관계자는 "대선 직후에는 재계의 보국 메시지는 더 많이 나올 수 있다"며 "상당수 그룹들이 승계, 경영권, 사업 측면 등등 다방면에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보니 보국을 앞세워 다양한 제스처들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평가도 있다. 한국 재벌이 탄생한지도 몇십년이 지났는데 언제까지 '보국' 얘기를 할거냐, 진짜 '보국'은 메시지를 던질 게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사업적으로 특혜를 받는다거나 자본시장의 글로벌스탠더드를 역행하는 분할 상장을 수시로 하고 그로 인한 직간접적인 수혜가 오너 일가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오해'의 행동들을 애초에 하지 않으면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정권 교체 때마다 '어느 라인을 잡아야 하나'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도 줄어들테다.
정해진 규칙 하에서 일을 잘하고 그 성과를 잘 나누는 것, 가장 기본적인 행위들이 앞으로 재계가 해야 할 진정한 보국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를 이용하는 '각자도생', 정경유착의 대물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29일 15:3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