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책임준공 손해배상 첫 인정…법원은 왜 '전액 배상'을 명령했나
입력 25.05.30 16:29
"기한 내 준공 못 하면 배상" 명시한 계약 조항, 법원이 효력 인정
준공 지연으로 선매입 계약 해제…"대출금 회수 기회 상실" 판단
‘손실보전은 위반' 주장 기각…채무불이행에 따른 정당한 배상
  • 신탁사의 책임준공 미이행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전액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계약 해석을 넘어, 책임준공 확약 자체를 실질적인 담보 장치로 인정했다. 신탁사의 법적 책임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0일 서울중앙지법(민사42부)은 신한자산신탁이 23개 새마을금고 대주단에게 256억원의 PF 대출 원리금을 전액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탁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가장 핵심이 된 부분은 계약서에 명시된 약속이었다. 신한자산신탁은 "책임준공을 하지 못하면 대주에게 발생한 손해(대출 원리금과 연체이자)를 배상하겠다"고 명확히 기재했다. 

    법원은 이 조항이 실제 손해가 얼마인지 '따질 필요 없이' 사전에 금액을 정해놓은 손해배상 예정 조항으로 보고, 그 효력을 인정했다.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둔 약속이란 의미다. 신한자산신탁은 이를 단순히 손해 항목을 기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금액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고 계약 맥락상 명백히 "못 지키면 물어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판단했다.

    또 신한자산신탁은 준공이 지연됐더라도 결국 완공된 만큼 매각을 통해 대출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손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차액만 배상하면 충분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책임준공 지연으로 선매입 계약이 해제되면서 원고들이 대출 원리금 회수 기회를 사실상 상실했다는 점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삼았다. 채무를 뒤늦게 이행해도 채권자에게 실익이 없으면 전액 배상해야 한다는 민법상 원칙도 적용됐다. 

    신한자산신탁은 이번 계약 구조가 자본시장법이 금지한 ‘손실보전’에 해당한다며 계약 무효를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선수익권이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번 계약은 투자 손실 보전이 아니라 준공 지연으로 발생한 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신탁사의 책임준공 확약을 단순한 보조적 약속이 아니라 대출 원리금 회수를 담보하기 위한 핵심 장치로 판단했다. 따라서 준공이 지연되면 곧바로 손해배상 의무가 발생하고, 사전에 정한 배상액을 지급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해석이다. 

    특히 신한자산신탁이 부동산 신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 반면, 원고들은 지역 단위 금고에 불과하고 이번 사건에서 별다른 귀책 사유도 없다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책임준공 확약에 대한 판례가 없었던 가운데, 이번 판결은 해당 구조의 법적 효력을 폭넓게 인정한 첫 사례다. 신탁사의 책임이 명확해졌다는 점에서 향후 진행 중인 유사 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한자산신탁 외에도 KB부동산신탁, 코리아신탁, 우리자산신탁, 교보자산신탁 등 주요 신탁사들이 총 13건, 약 3454억원 규모의 유사 소송에 연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