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바뀌기 전에…' 딜에 속도 내고 포트폴리오 줄이는 PEF들
입력 25.06.18 07:00
DIG에어가스·SK실트론 등 '조단위 딜' 진행
새정부 PEF 규제 공약에 업계 긴장감 고조돼
회수 지연 속 포트폴리오 정리 기조도 뚜렷
  • 정권 교체와 함께 사모펀드(PEF) 산업을 둘러싼 정책 변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PEF 운용사들은 주요 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시에 보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려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업계에선 “새 정부 기조가 명확해지기 전에 매각 가능한 자산부터 정리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맥쿼리자산운용은 지난 9일  DIG에어가스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진행했다. 주관사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이며, 브룩필드와 블랙스톤, KKR 등 글로벌 PEF들과 더불어 프랑스 가스기업 에어리퀴드 등이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자 측은 DIG에어가스의 몸값으로 약 5조 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추정치인 2,500억 원에 멀티플 20배를 적용한 수준이다. 

    거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매도자와 원매자 간 밸류에이션 눈높이가 일정 부분 맞아떨어지는 분위기”라며 “가능하면 내달 말까지 본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상반기에는 이렇다 할 대형 거래가 드물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볼만한’ 딜은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조 단위 딜인 SK실트론도 속도 조절 중이다. SK㈜가 보유한 SK실트론의 경영권 지분(70.6%)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당초 9일로 예정됐던 예비입찰은 일부 잠재 원매자들의 요청에 따라 연기됐다. 한앤컴퍼니, 스틱인베스트먼트, IMM프라이빗에쿼티(PE) 등이 잠재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현재까지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 곳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SK실트론의 기업가치는 약 5조 원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매각이 성사될 경우 부채를 제외한 지분 인수 금액은 약 2조5,000억~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SK 측의 희망 가격이 높아, 일부 원매자들은 적정 가치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유력 원매자가 거론되고 있어 거래 속도는 조만간 붙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처럼 상반기 시장에서 보기 드물었던 ‘빅딜’들이 하나둘씩 본격 속도내며 시장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권 교체가 변수로 떠올랐다. 이재명 정부는 PEF 운용사에 대한 규제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이에 따라 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는 PEF와 이들 펀드에 출자하는 기관투자자(LP)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고, 차입매수(LBO)에 제한을 두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민연금 또한 출자 선정 과정에서 기존 투자기업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을 냈는지 여부를 집중 심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LP는 출자 확약 이후라도, 불법행위가 적발되거나 세무·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운용사에 대해 출자금 회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5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PEF의 과도한 차입을 제한하는 일명 ‘MBK 먹튀 방지법’을 발의했다. 핵심 내용은 PEF의 차입 한도를 순자산의 400%에서 200%로 낮추는 것이다. 다만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400% 이내에서 차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함께 담았다.

    또한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가능성도 높아졌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지명된 강훈식 의원은 지난해 6월,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확보할 경우 잔여 주식을 전부 공개매수해야 한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통령령으로 예외를 둘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100% 의무공개매수를 추진하는 내용이다. 이는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50%+1주’ 기준보다 한층 강화된 수준이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그간 금융당국의 감시가 거세지면서 ‘일단은 조용히 지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정권이 바뀐 뒤에는 정책 방향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며 “불확실성이 큰 만큼, 이미 진행 중인 딜은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자는 입장도 많다”고 전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최근 국내에서 활동 중인 PEF들 사이에선 포트폴리오 정리 기조도 감지된다. 전략적 투자자(SI)의 부재로 회수가 지연되고 있는 포트폴리오 기업을 우선 정리하고, ‘알짜’ 자산에 집중하려는 전략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자문사들도 하반기 실적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PEF들도 보유 중인 자산을 매각하지 못하면서, 전반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줄여가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