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이브 손 들어준 법원…갈림길에 선 뉴진스, 침묵하는 민희진
입력 25.06.19 13:22
취재노트
항소심도 "전속계약 유효"…뉴진스 선택지 좁아져
'보이지 않는' 민희진…풋옵션 금액 공방에 집중
아이돌 '골든타임' 놓치고 있는 뉴진스의 선택은?
  • 항소심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법원은 뉴진스와 소속사 어도어(하이브) 간 갈등에서 다시 한 번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태의 중심에 선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는 공개 행보 없이 하이브와의 풋옵션 관련 법적 공방에 집중하고 있다. 법적 대응 여지가 좁아진 뉴진스 멤버들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업계에선 이들이 아이돌로서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있다.

    이번 달 17일 서울고법 민사25-2부는 기획사 지위 보전 및 광고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대한 뉴진스 멤버 5명의 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어도어와 뉴진스 사이의 신뢰관계가 파탄 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채무자들이 전속계약에서 임의로 이탈해 독단적인 연예 활동을 하게 될 경우, 채권자는 그간의 투자 성과를 모두 상실하게 되는 등 심각한 불이익을 입게 된다. 반면, 채무자들은 채권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향후 연예 활동을 통한 모든 성과를 사실상 독점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밝혔다.

    앞서 1심 법원은 지난 3월 어도어 측이 제기한 기획사 지위 보전 및 광고 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전부 인용했다. 이에 멤버들이 이의신청과 항고를 제기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1심 판결도 그렇고, 법원에서 멤버들 측 주장을 받아들이면 전속계약 체계를 뒤흔드는 셈이라 예상된 결과였다”며 “보통 이런 사안에 대해 법원이 ‘약자’나 개인의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사건은 예외적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항고 기각 다음날인 18일 어도어는 “이번 결정이 멤버들이 다시 뉴진스라는 제자리로 돌아와 활동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발표했다. 뉴진스 멤버들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어도어가 복귀를 촉구했지만, 뉴진스가 단기간 내 하이브에서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은 현 시점에선 불투명하다. 지난 3월 가처분 인용 이후에도 하이브 측과 뉴진스 측은 공식·비공식적으로 아무런 접촉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회사는 멤버들의 동향을 비공식 루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뉴진스 멤버들이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재항고할 수는 있지만, 대법원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아니라 법률 위반 여부만 판단한다. 2심에서 1심 결과를 뒤집을 결정적 사실이 없었던 만큼, 대법원이 재항고를 기각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법원이 연이어 전속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한 점을 고려하면, 현 시점에서 뉴진스 멤버들은 사실상 태업(노동 거부) 또는 계약 위반 상태에 놓여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아티스트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소속사는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다만 여론과 향후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하이브가 뉴진스 멤버들을 상대로 당장 법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뉴진스 멤버들의 선택이 주목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시작점인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4월 시작된 하이브와 민희진 간 갈등은 같은 해 9월, 뉴진스 멤버들이 전면에 나서며 어도어(하이브)와 뉴진스 간 직접적인 법적 분쟁으로 확산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뉴진스 측의 계약 해지 주장이 민 전 대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민희진은 계약의 핵심 전제가 아니다. 오히려 하이브가 뉴진스를 알아보고 이들만의 회사를 설립했다”며 “계약의 핵심은 민희진이 아닌 하이브”라고 지적했다. 전속계약상 민 전 대표와 관련된 조항이 없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수차례 기자회견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던 민 전 대표는 뉴진스가 전면에 나선 이후로는 별다른 외부 행보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 한때 외부 투자자, 가수 지드래곤의 소속사 갤럭시코퍼레이션 등과 접촉설이 돌 정도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민 전 대표는 현재 하이브와의 법적 공방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달 1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는 민 전 대표 등 3명이 하이브를 상대로 제기한 풋옵션 행사 관련 주식매매대금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같은 날 재판부는 하이브가 민 전 대표 등 2인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 간 계약 해지 확인 소송 3차 변론도 병행해 심리했다. 이날 양측은 풋옵션의 효력을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였고, 다음 기일은 9월 11일로 지정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법적 다툼을 떠나,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오른 뉴진스가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현실을 아쉬워하고 있다. 특히 아이돌 그룹은 연령 등으로 인해 활동에 적정 시기가 있는 만큼, 분쟁 장기화로 커리어 측면에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다. 경쟁이 치열하고 트렌드 변화가 빠른 K-팝 시장의 특성상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화려한 컴백’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SM엔터테인먼트와 남성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사이의 법적 분쟁은 약 3년 4개월간 이어졌다. 동방신기는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지만, 2009년 7월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 세 멤버가 SM엔터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같은 해 10월 법원이 이를 일부 인용하면서 활동이 중단됐다. 이후 세 멤버는 2010년 ‘JYJ’라는 이름으로 독자 활동을 시작했다. 긴 법정 공방은 2012년 말 세 멤버와 SM엔터와의 전속계약 해지 합의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