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부 핀셋지원 바라는 2차전지 업계…해외진출 소재사 파산설까지
입력 25.06.20 07:00
유동성 압박 커지며 한국판 IRA 예고에도 업계 불안 심가
업황 갈수록 꺾이며 해외 진출한 소재사 파산설까지 부상
셀 3사 내부서 자산매각 검토할 정도…"현금 선지급 필요"
2차전지 불안감 커지면 구조조정 과제 산적한 정부도 부담
  • 2차전지 업계가 이재명 대통령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새 정부가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예고했지만 당장 적자를 면치 못하는 마당에 좀 더 확실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관련 생태계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업계에선 더 늦기 전에 2차전지만 콕 집어 유동성 압박을 해소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최근 국회와 정부 유관부처에선 이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전략산업 국내 생산 촉진세제 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반도체나 미래 모빌리티, 2차전지 등 전략 제조업의 국내 생산·판매 물량에 대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이라 업게에선 한국판 IRA로 통한다. 대상 품목이나 산업군은 물론 지원 규모도 특정되지 않은 시점이라 기업들도 저마다 요구사항을 추려내며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 

    가장 초조한 것은 2차전지 업계다. 맏형 LG에너지솔루션을 위시해 배터리 셀부터 뒷단 소재사까지 밸류체인 전반이 공급과잉과 적자 늪에 빠져 있다. 올해까진 해외 생산기지 확충에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전방 전기차 시장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숨이 턱 끝까지 찬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2차전지 소재사 중에선 해외 현지법인의 파산이 임박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셀 3사를 따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 지은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전방 고객사들이 전보다 더 보수적으로 전기차 판매 계획을 꾸리고 있어서 후방 소재사 곳간이 비어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다"라고 전했다.

    올해 전기차 판매성장 전망치도 계속해서 조정 중이다. 연초만 해도 전체 시장이 20%가량 성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으나 미국은 물론 유럽까지 기존 친환경 정책을 느슨하게 풀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보조금 예산 축소를 골자로 한 IRA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고 유럽연합(EU)에선 완성차 제조사 이산화탄소(CO2) 배출 규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전기차 성과가 부진한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 목표치를 낮출 수 있게 된 만큼 충격파는 고스란히 국내 2차전지 밸류체인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국판 IRA를 서둘러 시행해도 2차전지 업계가 숨통을 트기 어렵다는 평이 많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셀, 소재 가릴 것 없이 2차전지 기업 전체가 각국 보조금 정책에 맞춰서 해외 현지에 생산설비(Capa)를 깔았다가 가동률 하락으로 적자를 보고 있으니 국내 생산, 판매분도 제한적이고 법인세 자체도 내지 않는 상황"이라며 "당장 현금흐름이 부족한 상태라는 게 가장 심각하다. 기업들로선 이연법인세자산으로 반영된 걸 당겨서 보조금 형태로 받았으면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세금을 깎아주는 것보다는 선(先)지급 방식의 현금 지원이 시급하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실제로 올 들어 가장 보수적으로 사업을 펼쳐온 삼성SDI마저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그나마 모회사가 증자를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던 덕에 차입을 늘이지 않으면서 유동성 압박을 해소할 수 있었다. 나머지 기업들은 영구채나 메자닌 발행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웬만큼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지 않으면 투자자를 모으기 힘든 상황이다. 

    국내 소재사 가운데 해외 공장을 닫거나 매각하는 곳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 관련 생태계 전반으로 불안감이 번질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대형 그룹사가 보유한 셀 3사 내에서도 국내 공장을 정리하는 등 방안이 오르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철강, 석유화학 등 다른 산업 구조조정부터 내수 진작까지 과제를 쌓아둔 정부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업계에선 2차전지만이라도 우선 지원 대상으로 선별하는 등 핀셋지원에 나서는 게 현실적이라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정부 정책 여력도 제한적이고 전략 산업 내 2차전지 수준으로 유동성 압박을 겪는 산업도 없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도 어차피 중국을 견제하려면 한국 2차전지 기업들이 필요할텐데, 당장 소재사들이 버틸 수 없어서 생태계 전체가 불안하다"라며 "우선순위를 따져서 2차전지 업계 유동성 문제부터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