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증권사는 EB 발행 '先제안' 분주
입력 25.06.26 07:00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기업들, EB로 선제 대응
보유 자사주 10% 넘는 기업들, EB 발행 '러시'
증권사, EB 영업 박차…발행사 리스트업까지
  • 새 정부가 들어서며 기업들의 교환사채(EB) 발행이 다시 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머지 않아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가 도입될 것이란 관측이 시장에 팽배해지면서, 선제적으로 EB를 활용해 자사주를 처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B 발행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분주해진 모양새다.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사주를 보유한 기업들을 선별해, 선제적으로 EB 발행을 제안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EB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까닭에, '막차 수요'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증권사는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 총수의 10% 이상인 상장사들의 리스트를 선별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가 도입되기 전, 이들 상장사에 EB 발행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당시 상장사의 자사주 원칙적 소각 제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관련 내용이 최근 여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가 도입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자사주 소각 계획 의무 공시 상장사 범위를 확대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주당순이익(EPS)와 주당순자산(BPS) 상승으로 이어져 주주가치 제고를 기대할 수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자사주를 단순히 소각하는 것보다 EB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 장점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EB를 활용하면 지분 희석 없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시장에 자사주를 직접 매각하는 형태가 아닌, 이미 보유한 주식을 활용하는 형태라 지분 구조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또한 보유 중인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 3자에게 처분하면 의결권을 되살릴 수 있어 회사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에 상장사들은 EB 발행을 대폭 확대하는 추세다. 아직 상반기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EB 발행량이 1조원을 넘어서며 지난해 상반기 발행량(5751억원)을 크게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SKC와 SNT다이내믹스, KG에코솔루션, 리파인 등의 기업이 자사주를 활용해 EB를 발행했다.

    이들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자사주 보유 비중이 10%가 넘는 기업들이다. 이번 EB 발행을 통해 그 비중이 10% 안쪽으로 줄어들게 됐는데, 사실상 곧 있을 규제를 의식한 행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시장에서는 제도가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올해 말까지는 이러한 'EB 발행 러쉬'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업들의 EB 발행 수요가 늘어나면서, 증권사들도 주관 자격을 따내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EB는 쿠폰금리가 다른 메자닌 채권보다 낮아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은 아니지만, 현재는 기업들의 EB 발행 목적이 뚜렷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건이 낫다는 평가다. 증관사들이 선제적으로 EB 발행을 제안하는 등 영업에 적극적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사주와 관련한 규제가 도입될 것이란 것은 아직 드러난 것은 없지만 시장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며 "선제적으로 발행사에 EB 발행을 제안하기 위해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상장사들을 리스트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