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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제1우선주(한화우)의 상장폐지를 둘러싼 갈등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자사주 소각을 통한 상폐 요건을 충족한 이후 별다른 조치 없이 정리매매에 돌입했던 한화는, 행동주의 플랫폼과 정치권 압박 속에 장외매수를 약속하며 사태를 일단락했다. 이번 사례는 '법적으로 문제없음'을 앞세운 대기업의 상장폐지 방식이 새로운 균열을 맞이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처음부터 쟁점은 뚜렷했다. ㈜한화는 지난 2023년 7월 자사 1우선주 25만여주를 장외에서 매입해 전량 소각했고, 이로 인해 남은 상장주식 수는 19만9033주로 줄었다. 한국거래소 규정상 2개 반기 연속 20만주 미만이면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정확히 967주만 더 남겼다면 상장 유지는 가능했기에, 자본시장에선 '고의적 상장폐지'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행동주의 주주 플랫폼 '액트(ACT)'는 소액주주들과 함께 여론전을 본격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며 정치권을 끌어들이자, 한화그룹도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그룹 내 대관을 총괄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CR실이 의원실을 직접 접촉해 입장문을 전달했고, 최근 한화그룹은 소액주주 측에 "상장폐지 후 장외매수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지난해 이사회 의사록에 명시됐던 '정리매매 기간 중 장내 또는 장외매수 검토'라는 모호한 표현이, 정치권 개입 이후 현실로 구체화된 셈이다.
그간 한화그룹은 정치권에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공개매수 가격은 3개월 평균가 대비 24.5%의 프리미엄을 붙였고, 수차례 공시를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앞선 공시에는 매수 계획과 상폐 가능성이 명시됐으며, 정리매매 전에도 주주 안내는 이뤄졌다는 설명도 붙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일부 도의적 비판은 피할 수 없었던 분위기다. 액트 측에서도 이번 사안의 핵심은 '법리'보다 '정서'라고 강조했다. 회사의 무대응 속 정리매매에 돌입하며 주주들은 "전세금 떼일까 걱정하는 세입자의 마음"이라며 불안을 호소했고, 행동주의와 정치권이 개입한 이후에야 공식 입장이 나왔다.
한 자본시장 변호사는 "형식적으로 거래소 요건에 부합했더라도, 상장주식 수를 절묘하게 조절해 상폐 조건을 맞춘 것은 소위 '규정 활용의 편의주의'로 비칠 수 있다"며 "투자자 보호보다는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단순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화우 상폐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 중 진행됐다. 한화우는 의결권이 없는 주식으로, ㈜한화 보통주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를 통해 집중 보유 중이다. 한화에너지는 2021년과 2023년 연속으로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14.9%까지 끌어올렸다. 그룹 지배력을 보통주에 집중시키려는 상황에서, 의결권 없는 우선주를 상장폐지한 것은 사실상 의도된 선택이자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의미다.
이번 고의 상폐 논란은 향후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자사주 활용, 비상장 전환 등에 있어 새로운 제약 조건을 상기시킬 것으로 보인다. 법적 절차 충족만으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점이다.
특히 행동주의가 소액주주를 결집시키고 정치권과 연계해 입법·대관 채널까지 동원하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단발성 이슈가 아닌 구조적 변수로 자리잡는 양상이다. 액트는 삼성전자, LG화학, 포스코홀딩스 등 주요 기업에 주주서한을 보내고, 집중투표제 도입과 개인주주 대상 IR 정례화 등을 공식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여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는 필수"라며 상법 보완 입법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개정된 상법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고, 3%룰과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도 포함됐다. 공포 즉시 시행되는 조항도 있는 만큼, 기업은 향후 소송 리스크까지 고려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환경에 놓인 셈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주주의 자사주 활용이나 지배력 강화 시도가 소액주주 희생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도 개입을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이제 상장폐지나 구조개편 관련 이슈는 법률보다는 정치 이슈가 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대관 임원도 "행동주의와 정치권의 결합이 만들어낸 파급력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는 비재무적 이슈에 대한 국회와의 소통이 실무조직에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장외매수 실시를 약속하면서 사태를 일단락했다. 다만 교훈은 분명히 남는다. 소액주주는 단일 개체가 아니라 집단의 형태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치권은 그들의 편에 설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공시와 프리미엄이 모든 의혹을 잠재우던 시대는 끝났다. 기업들은 이제 절차뿐 아니라 명분까지 함께 갖춰야 하는 시대에 진입한 셈이다.
이미 행동주의 주주 플랫폼들은 정치권, 특히 여당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개별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플랫폼과 정치권이 서로의 목적을 공유하며 접촉면을 늘려가는 형국이다.
재계의 시선은 이제 '누가 다음 순번이냐'에 쏠리고 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둘러싼 롯데렌탈,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불거진 KG그룹, 자사주 활용 논란이 제기된 태광산업 등의 회사가 언급되고 있다. 이미 이들 기업의 경영진은 공시 일정보다 국회의 일정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취재노트
967주만 남겼다면 피할 수 있었던 기묘한 상폐
與 손잡은 행동주의 플랫폼에 손 내민 한화그룹
장외매수 약속하며 봉합…구조적 리스크는 남아
정치-시장 연결고리 된 주주연대 다음 타깃에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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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7월 1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