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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론 양재천, 북쪽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들어서는 삼성동, 서쪽으론 번화가의 중심 강남역, 동쪽으로 동부간선도로를 바로 올라탈 수 있는 강남의 한복판 대치동. 그 대치동의 상징과도 같은 은마아파트의 빗장이 드디어 풀렸다.
서울시가 강남구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 결정안을 수정 가결함에 따라 은마아파트는 최고 49층, 5893세대(공공주택 1090가구)의 대단지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됐다. 1979년 준공된지 46년만이자 재건축 추진 30년만이다. 은마아파트는 송파구에 인접해 준(準)강남으로 불리는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00세대)에 이어 강남권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이 될 전망이다.
서출동류(西出東流), 서쪽에서 물이 시작돼 동쪽으로 흘러나가는 모양을 갖춘 양재천이 흘러 '귀인이 배출되는 명당'이란 평가답게, 대치동은 우리나라 사교육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중심으로 좌로는 한티역, 위로는 휘문고등학교까지 형성된 학원가가 발달돼 있는데, 학생들이 학원 수업을 마치는 평일 저녁엔 이들을 수송하기 위한 학부모들의 차량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늘 연출된다. 주민들에겐 이미 수 십년 간 이어져 온 익숙한 풍경이다.
1979년 은마아파트가 완공됐을 당시 주변은 논밭이 전부였다. 양재천은 물론이고 개포동 개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시점. 저습지였던 대치동 땅을 헐값에 사들인 건 한보그룹을 이끌던 고(故) 정태수 회장이었다. 월평균 소득이 14만원 수준이던 시절, 은마아파트의 분양가는 2000만~2340만원으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지만 1년여만에 은마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한보그룹은 이를 기반으로 재계 14위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은마아파트 상가엔 한보그룹 본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은마상가(現 은마종합상가)에서 '한보(韓寶)'라고 적힌 파란 간판이 떼어진 건 한보그룹이 쓰러진 외환위기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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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의 상징과도 같은 은마아파트 재건축 과정은 상당히 지난했다.
재건축 논의는 1996년부터 시작됐다. 조합원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50층 이상의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해왔지만 2009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직시절부터 서울시가 35층 층수제한을 고수하면서 20년 가까이 표류했다. 평형 배정과 분양 물량 등을 두고 조합원 간 갈등이 불거졌고 이 과정에서 추진위원회와 조합 집행부가 수차례 교체됐다. 상가와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드러나면서 재건축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서울시에서 49층까지 허용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규제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수 십년을 기다려온 기회비용을 고려하는 조합원과, 안정적인 사업시행을 원하는 조합원 간의 이견으로 앞으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는 평가도 있다.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까진 아직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정비계획이 확정된 상태로, 사업시행과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야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는 과정에서 조합원과 일반 분양 물량 및 분양가가 확정된다. 이후 이주 및 철거, 본격적인 착공에 돌입한다. 조합 측은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심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사업시행인가를 받겠단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업계에선 관리처분인가를 받기까진 빨라야 2~3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준공까진 약 10년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강남 한복판에 5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공급 계획이 계획이 점차 구체화하면서 건설업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수익성을 따져봐야겠지만 그 상징성만으로도 상위 대형건설사 대부분이 탐낼만한 사업지란 평가다.
현재는 삼성물산과 GS건설(舊 LG건설) 컨소시엄이 시공사 지위를 갖고 있다. 지난 2002년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해당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후 2003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개정되면서, 시공사 선정은 반드시 조합이 설립한 이후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하도록 명시됐지만 당시엔 추진위원회 차원에서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었다. 법제도가 개정되기 이전이지만 양사의 시공사 지위는 유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관사인 삼성물산과 GS건설 역시 재건축 시공권이 유효하단 점을 향후에도 강하게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조합측에서 총회에서 시공사 재확인 절차를 거치거나, 시공사를 다시 선정하려는 움직임도 배제할 수는 없다. 상위권 건설사들이 대거 관심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합 측은 더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경쟁 입찰을 추진할 수 있다. 삼성물산(래미안)과 GS건설(자이) 제외한 나머지 건설사들은 프리미엄 브랜드(▲현대건설 디에이치 ▲DL 아크로 ▲대우건설 써밋 ▲포스코건설 오티에르 ▲SK에코플랜트 드파인) 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압구정동, 개포동, 반포동 등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에서 시공권을 따낼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란 평가도 있다.
은마아파트의 가격은 강남권 집값과 강하게 연동돼 있다. 또 서울 재건축 아파트 단지 가격 전망의 바로미터로 여겨지기도 한다.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 7월 42억원에, 76㎡는 6월 36억원에 거래됐다. 현재 84㎡의 호가는 최소 37억8000만원부터 최대 43억원에 형성돼 있다. 전세가율은 약 21~23%이다.높은 매매가와 비교해 전세가격은 비교적 낮은편이다. 약 7억~10억원 수준에 매월 20여건 거래가 발생하고 있다.
연식이 오래돼 시설이 매우 낙후한만큼 집주인들이 굳이 실거주를 할 유인은 없다. 하지만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해야 하는 수요가 끊이질 않으면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5년 이상 거주를 원하는 가구들의 거래가 빈번하다.
은마아파트가 재건축에 돌입하면 대치동은 물론 인근 지역에 전세가격이 상당히 자극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치동 인근에 거주를 해야하는 4000세대 이상의 가구가 전세집을 찾아나선다면, 전세가의 상승은 물론 매매가를 밀어올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속도가 인근 지역에서 가장 더디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민들의 본격적인 이주 시점엔 비교적 저렴한 인근에 구축아파트를 찾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톡톡
대치동 학원가를 대표하는 은마아파트
서울시, 1일 은마아파트 정비계획안 가결
최대 49층 5893세대 주거지로 탈바꿈
삼성물산·GS건설 시공권 지킬 수 있을지 관건
대규모 이주에 대치동 인근 집값 자극 가능성도
대치동 학원가를 대표하는 은마아파트
서울시, 1일 은마아파트 정비계획안 가결
최대 49층 5893세대 주거지로 탈바꿈
삼성물산·GS건설 시공권 지킬 수 있을지 관건
대규모 이주에 대치동 인근 집값 자극 가능성도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9월 03일 14:0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