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상법개정·노란봉투… 쏟아지는 규제에 '대형로펌 특수'
입력 25.09.09 07:00
노란봉투법 통과에 대형 로펌들 선제 자문 마케팅 분주
기업들은 "쏟아지는 규제 대응 비용 부담…로펌만 특수”
M&A 위축 속 경영권 분쟁·오너 형사 사건이 주요 매출
  • 지난 7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최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대형 로펌들이 분주해졌다. 로펌들은 본격적인 법 시행에 앞서 대응에 나서려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선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M&A(인수·합병) 자문 사건이 줄어든 가운데, 경영권 분쟁·오너 형사 사건 등 굵직한 재판 건들이 올해 대형 로펌의 성과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주요 로펌들은 노란봉투법과 관련, 과거 ‘중대재해센터’와 유사하게 노동그룹을 중심으로 별도 TF나 전담팀을 꾸려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 개최 등 선제적 조치도 활발하다. 상법 개정은 적용 범위가 넓어 기존 기업자문 부문이 대응을 맡고 있다.

    통상 로펌 세미나 참가자는 수백 명, 많아야 천여 명 수준이지만 최근 한 대형 법무법인 세미나에는 온·오프라인을 합쳐 2000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 노란봉투법이 현재 재계에서 가장 ‘핫 이슈’라는 방증으로 꼽힌다. 

    법 시행까지 유예 기간이 6개월 남았지만,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하청 노조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로서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분석이다. 현행 시행령 해석 범위가 넓다 보니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해야 하고, 그룹별·기업별 상황이 달라 로펌들도 ‘맞춤 컨설팅’을 내세워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이나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 판례가 없어 초기 방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2022년 1월 시행 이후 사회적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재계 전체에 충격을 줄 만한 대형 처벌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수준에 그치면서 실효성 논란도 있어왔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은 원청에도 단체교섭 의무가 미칠 수 있는데, 구체적 범위가 모호하다”며 “교섭 요구가 있을 경우 기업은 가처분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고,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어 기업들 입장에서는 혼란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애매한 법’은 결국 로펌들에 일감을 몰아주는 셈이어서, 최근 로펌들이 기업을 찾아다니며 앞다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대형 로펌들이 각종 법 개정과 규제 도입 덕분에 특수가 예상되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늘어나는 법률 비용에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안 그래도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법률 대응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상법에 노란봉투법까지 도입이 예고되면서 대응해야 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며 “로펌과 세미나도 하는 등 준비 중이지만 시행령 자체가 워낙 추상적이라 대응책도 추상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로펌 쪽에서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때문에 맞춤 세미나 제안이 많이 오지만 비용 이슈가 있어서 아직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로펌을 통한 대비도 그나마 여유(?)가 있는 곳이나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M&A 부문을 포함한 기업자문은 통상적인 수준의 거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시장 전체가 호황은 아니다 보니 ‘특수’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나 인수에 나서는 건도 드문 상황이다. 

    한 M&A 담당 변호사는 “대기업들은 일단 신규 투자는 당분간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M&A를 담당하는 임원들은 딜을 해야 성과를 내는데 그렇지 못해서 우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M&A 담당 변호사는 “대기업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 현금이 있는 중견기업들을 공략하고 있는데, 사업 확장 의지가 있는 곳들이 있어 앞으로 M&A 시장에서도 주요 고객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빅딜’이 드문 가운데 각종 법 개정 대응과 더불어 경영권 분쟁이나 그룹 오너 형사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올해 법무법인 성적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앤장은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고려아연 건과 관련해 자문료와 별개로 성공보수만도 수십억 원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태평양은 상반기 교보생명 분쟁 국제중재(어피너티 컨소시엄 측) 건의 매출 기여도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광장은 에어리퀴드가 4조8500억원에 DIG에어가스를 인수하는 자문을 맡았고, 이외에도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정리 등 SK그룹 거래를 다수 자문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진행하는 이른바 ‘집사 게이트’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관련 기업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수사가 물꼬를 트자 연루된 기업들의 자문 문의가 잇따랐다는 후문이다. HS효성은 김앤장을 선임했고, 카카오모빌리티는 세종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세종은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경영쇄신위원장 사건에서도 김 위원장을 대리하고 있다. 광장도 함께 김 위원장 사건을 맡고 있다. 지난달 검찰이 김 위원장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하면서 로펌들은 무죄 입증을 위해 분주한 상황이다. 만약 재판부에서 무죄가 입증될 경우 로펌들은 상당한 수준의 성공보수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집사 게이트에는 이들 기업뿐 아니라 한국증권금융, 신한은행, 키움증권, 경남스틸, JB우리캐피탈, 유니크, 한컴밸류인베스트먼트 등이 줄줄이 연루돼 있어 다수 로펌이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남매 간 다툼이 오너가 분쟁으로 번진 콜마그룹 경영권 다툼에도 대형 로펌들이 총출동했다. 윤동한 콜마홀딩스 회장과 딸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가 연합해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을 상대로 줄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윤 대표는 김앤장, 세종, 기현·해광 등 총 4곳의 로펌을 선임했다. 윤 대표의 남편인 이현수 김앤장 변호사와 김앤장 기업승계센터가 관련 송사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콜마홀딩스와 윤 부회장 측은 법무법인 태평양, 광장을 선임해 대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