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 조성 앞두고 대기업-PEF '물밑 공조' 움직임
입력 25.11.14 07:00
150조원 초대형 정책펀드 첨단산업 투자
민간투자 유도형 구조...'자금 매칭' 핵심
결국 민간자본과 산업이 주체될 수밖에 없어
투자선별 능력 갖춘 'PEF 조언'이 필수 평가
  •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앞두고 대기업과 사모펀드(PEF)들이 물밑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성장동력 육성 프로젝트의 실질적 집행 주체가 결국 민간 자본과 산업 주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국민성장펀드를 'IMF 이후 자금시장 경색을 풀었던 김대중 정부의 프라이머리CBO(Primary-CBO) 프로젝트 시즌2'로 평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AI·반도체·로봇·미래차 등 첨단전략산업을 집중 지원하겠다”며 향후 5년간 15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민간·국민·금융권 자금 75조원을 매칭해 총 150조원 규모의 펀드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해당 프로젝트의 성공이 코스피 상승과 더불어 이재명 정부 경재정첵의 성과의 큰 축이 될 것이다.

    핵심은 민간투자 유도형 구조다. 정부가 정책 방향과 세제·규제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대기업·PEF·VC·연기금·은행이 자금을 매칭하는 형태다. 산업부·기재부·금융위가 각각 투자심사, 세제지원, 자금중개를 맡는 방식으로 조율 중이다.

    투자 분야는 AI 데이터센터 구축, 바이오시밀러 종합제약사 육성, 전력망 인프라 고도화 등 대규모 자본투입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단순한 창업·벤처 육성 차원을 넘어, 국가 인프라와 전략산업 생태계를 민관이 공동 구축하는 모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실상 총력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물적,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시기라 150조원 펀드의 성공에 사실상 국운이 달렸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과 PEF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대기업은 실질적 투자처(프로젝트)를 발굴·주도하고, PEF는 펀드 운용을 통해 사업성과 자금집행의 효율성을 책임진다. 금융지주사들은 PEF와 공동으로 투자 구조를 설계하거나 위탁운용 형태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한 PEF 대표는 “첨단전략산업 육성은 대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프로젝트 선별 능력을 가진 PEF와 대기업 간 협업이 자금 집행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성장펀드 구상은 IMF 외환위기 직후 시행된 김대중 정부의 프라이머리CBO 제도의 확장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00년대 초 정부는 신용경색 완화를 위해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을 붙인 채권 풀(pool)을 조성,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의 회사채를 소화했다. 그 결과 중소·중견기업뿐 아니라 현대종합상사, 두산, 한화종합화학 등 주요 대기업이 숨통을 틀 수 있었다. 현재 대기업도 자금력 부족으로 첨단산업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에서 해당 펀드가 P-CBO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이번 국민성장펀드는 당시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해 정책자금+민간자본+대기업 집행력을 결합한 ‘3축형 펀드’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정부는 정책자금만으로는 대규모 첨단산업을 육성할 수 없기에, PEF와 대기업의 시장 논리가 함께 작동하는 모델로 설계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움직임이 시작됐다. 주요 금융지주사와 연기금이 운용사들과 잇따라 미팅을 갖고, 국민성장펀드 자금의 매칭 구조와 운용 가이드라인을 논의 중이다. 일부 대형 PEF는 대기업과 컨소시엄 형태로 AI 인프라·반도체 소재·로봇 물류 등 섹터별 공동 투자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는 투자 선별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산업 이해도와 트랙레코드를 갖춘 PEF의 조언이 필수적”이라며 “대기업-PEF-금융권의 3자 협력이 국민성장펀드의 자금 효율성을 높이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