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주식 거래량 폭발할 수도'…인프라 시스템 선제 점검 나선 증권가
입력 25.11.27 07:00
일평균 거래대금 40조…신용·담보융자도 한도 근접
대형사, 서버·주문·백오피스 전 영역 스트레스 테스트
해외주식 양도세 고객 급증…백엔드 연산 부담 확대
그린광학 상장일 MTS 장애…전산 인프라 리스크 부각
  • 내년 국내 증시 거래량이 한 차례 더 '폭발'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증권사들이 리테일 영업 전반의 인프라 점검에 서두르고 있다. 

    상당수 증권사에서 개인·기관 신용융자 한도가 이미 자기자본 한계에 근접한 데다, 신규 계좌 개설과 해외주식 거래가 동시에 급증하면서 MTS·HTS부터 백오피스 정산 시스템까지 전 구간이 상시 고부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증시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40조2853억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인투자자 거래가 정점을 찍었던 2021년 1월(42조1073억원)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대치다. 각 증권사의 신용·담보융자 한도 역시 자기자본 기준 상단을 대부분 소진한 것으로 전해지며, 자기자본 확충 없이는 내년 추가 대출 여력이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규 고객 유입도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이어지고 있다. 계좌 개설, 주문·체결, 잔고·평가 조회, 세금·수수료 정산 등 거래 전 과정에서 트래픽이 누적되며, 일부 증권사에서는 특정 시간대에 MTS 로딩 속도가 저하되는 현상도 포착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대부분 증권사의 개인·기관 대상 신용융자 한도가 자기자본 상단에 닿을 만큼 거래량이 많다"며 "코로나 당시에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때는 단기 이벤트였다. 지금은 추세적 장세라 내년에도 이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형 증권사들은 서버·주문 엔진·데이터베이스·백오피스·리스크 관리 체계 전반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 내년 거래량이 한 차례 더 급등할 경우 예상치 못한 병목 현상이나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대형사는 내부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가상 거래 폭증 상황'을 전제로 한 스트레스 테스트까지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증권사 리테일 부문 관계자는 "단순히 '지금 장애가 없느냐'를 보는 수준이 아니라, 거래량이 현 수준의 두세 배로 늘어나도 시스템이 버틸 수 있는지 가정 시나리오를 넣어 검증하고 있다"며 "특히 해외주식·파생형 서비스 고객이 늘면 주문보다 복잡한 백엔드 연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부담이 훨씬 크다"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신고대행 서비스도 주요 변수다. 일부 대형사의 경우 이미 이용자 수가 3만 명을 넘어섰고, 내년에는 두세 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외주식 양도세 신고는 매매내역·환전 기록·국가별 과세 기준·손익 통산 구조 등을 모두 반영해야 해, 단순 주문 시스템보다 훨씬 높은 연산 처리량을 요구한다.

    최근 신영증권의 '그린광학' 전산 사고는 증권사들이 인프라 점검에 나선 배경을 보여준다. 초정밀 광학 기업 그린광학은 코스닥 상장 첫날인 11월 17일 공모가(1만6000원) 대비 장 초반 240% 이상 급등하며 '따상'을 넘어섰지만, 이 과정에서 상장주관사인 신영증권 MTS에 약 1시간 동안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주가가 급등하는 동안 매도 주문조차 넣지 못하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신영증권은 장애 직후 "통신사 네트워크 문제로 발생한 외부 요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투자자 피해는 네트워크 원인과 무관하게 현실화됐고, 현재 회사는 피해 규모와 보상 기준을 두고 민원 대응에 나선 상태다. 업계에서는 "상장일 MTS 장애는 단순 불편을 넘어 고객 신뢰 훼손으로 직결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금융사가 전자적 전송·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배상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를 '일회성 네트워크 문제'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리테일 거래 증가에 대비한 국내 증권사 전산 인프라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년에는 국내·해외 주식뿐 아니라 공모·상장주, 파생 연계 상품까지 개인투자자 거래가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해외주식 양도세, 미국 공모주 청약대행, 해외 채권·달러RP 등 서비스가 꾸준히 붙으며 시스템이 처리해야 할 데이터 양과 복잡성은 올해보다 몇 배 더 커질 전망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금 증권사 시스템은 주문량이 많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문 이후 뒤에서 돌아가는 데이터 검증·정산·세금 계산 과정이 폭증하면서 병목이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라며 "내년에 올해 이상의 장세가 나타난다면, 단순한 서버 증설이 아니라 데이터 처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