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 고객정보 유출 쿠팡, 정치권 압박 가중...집단소송·내부관리 논란 부상
입력 25.12.01 14:11
성인 4명 중 3명 정보 털린 셈…사상 최대 규모 여파 확산
국회는 앞다투어 긴급 질의 …"내부 구조적 허점이 문제"
"더는 못 참아" 소비자들,대규모 집단소송 움직임 본격화
대관조직 키워 방패 삼던 쿠팡…이번 위기 막아낼 수 있을까
  • 국내 이커머스 1위인 쿠팡에서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정치권은 국회를 중심으로 이슈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유료 멤버십 해지와 집단소송 준비 움직임도 감지된다. 시장에서는 ‘IT 기업’을 자처해온 쿠팡이 내부통제 시스템의 치명적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기업 신뢰도와 사업 전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들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잇달아 긴급현안질의 전체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2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현안질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정무위원회는 3일 오후 2시 긴급현안질의를 열어 개인정보보호위원장과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를 상대로 사안을 점검할 예정이다. 

    앞서 쿠팡은 고객 계정 약 3370만개에서 이름과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등 정보가 유출됐다고 공지했다. 사실상 국내 성인 대부분의 정보가 털린 것이다. 지난 2011년 싸이월드·네이트 정보 유출 사고(약 3500만명)와 맞먹고, 올해 상반기 SK텔레콤 사고(약 2324만명)를 넘는 규모다.

    여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의원들은 11월 30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비판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의원들은 “국민의 일상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했다”며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과방위 의원들도 이번 사태를 “국가대응시스템 부재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이 각종 사회적 이슈로 주목을 받아온 만큼,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도 한층 적극적인 분위기다. 쿠팡은 그동안 택배기사·물류센터 노동환경 논란을 비롯해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퇴직금 미지급 의혹과 관련한 수사 외압 논란, 입점 수수료 과다 논쟁 등에서 꾸준히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새벽배송 문제까지 겹치면서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는 박대준 대표 등 경영진이 무려 5개 상임위원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했고, 수사 외압 의혹은 결국 상설특검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해외 체류를 이유로 청문회와 국정감사 출석 요구에 잇따라 불응했다. 이번 국감을 앞두고 쿠팡은 대관 조직을 크게 증원한 바 있다.

    한편 국회 내부에서는 이슈 주도권을 둘러싸고 미묘한 ‘기싸움’ 기류도 감지된다. 정무위원회는 개인정보 보호를 직접 관장하는 소관 상임위로서 사안을 주도하려는 분위기인 반면, 해킹 이슈를 담당하는 과방위가 먼저 강도 높은 성명과 비판에 나서자 일부에서는 “해킹이 아닌 개인정보 관리 부실이 핵심인 사건을 왜 과방위가 앞서 주도하느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한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이슈는 엄연히 정무위원회 소관”이라며 “과방위나 산자위에서도 다룰 수는 있겠지만, 개보위원장(개인정보보호위원장)을 불러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정책 보완점을 논의할 수 있는 정무위의 현안질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급하게 일정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집단소송 나서자” 뿔난 소비자들, 법적 대응 준비

    국내 이커머스 1위인 쿠팡에서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특히 고객 정보가 이미 반년 전부터 유출됐을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쿠팡은 유출된 개인정보에 결제 정보와 신용카드 번호, 로그인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단정할 수 없다”며 추가 조사 방침을 밝혔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다.

    온라인에서는 ‘쿠팡 소송’ 카페가 개설되는 등 소비자들의 집단 대응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소송이 본격화되면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소송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해당 소송 관련 인터넷 카페들의 회원 수는 1일 오전 기준 이미 2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개인 변호사와 법무법인들도 소비자들과 접촉하며 대응 채비에 나선 분위기다.

    판례에 따르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통상 10만원가량의 위자료를 인정해 왔다. 다만 이번 사건은 피해 규모가 워낙 크고 사회적 파장도 상당해, 개별 배상액이 기존보다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주요 사업지인 한국에서의 이번 사태를 해외 투자자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소비자 보호와 기업 책임 체계가 한국보다 훨씬 강해 관련 소송 리스크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쿠팡의 정기 구독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을 해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세계그룹의 이마트 등 국내 유통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1일 오전 기준 이마트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약 2.8% 상승하며 관련 이슈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형마트 경쟁사인 홈플러스는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경쟁력 약화 국면이 이어지고 있고, 이커머스 절대강자인 쿠팡마저 소비자 신뢰 위기에 직면하면서 향후 유통 시장의 지형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T 기업' 자처해온 쿠팡, 결국 터진 정보관리 참사?

    이번 사태는 해킹이 아닌 외국인 직원 소행으로 추정되면서 쿠팡의 내부 관리 허점까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현재 정부 조사와 별개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 이번 유출 사고는 중국 국적의 쿠팡 직원 소행으로 알려졌다. 해당 직원은 이미 퇴사 후 한국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을 계기로 쿠팡 내부에서는 개발자 인력의 상당수가 외국인으로 채워지는 등 인재풀 관리 허술이 ‘대형 사고’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직원은 쿠팡 내부에서 인증 관련 업무를 맡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직원 한 명’이 시스템 내부의 민감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권한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취약점을 악용할 수 있었다는 점 자체가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해당 직원이 퇴사한 이후에도 인증키에 접근해 정보 유출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시스템 권한 관리가 구조적으로 허술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새벽배송 이슈로 환노위의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정보 유출로 과방위ㆍ정무위의 관심까지 쏠리며 쿠팡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본격화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는만큼, 이후 관련 입법이 줄을 이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