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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은 사실상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SK그룹을 필두로 대기업들의 지난 5년 청산 작업이 연말이 가까워지도록 활발하게 진행된 덕이다. 지금도 그간 성장 영역으로 조명됐던 많은 사업들이 조정 작업을 거치고 있다.
내년에도 석유화학과 2차전지, 철강까지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사업조정 작업이 예상되는데 불황형 풍년으로 끝나지만은 않을 거란 희망도 감지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마중물을 대는 만큼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필두로 방산·바이오·K-소비재까지 성장에 초점을 맞춘 M&A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일어나길 고대하는 시선이 많다.
올해 가장 많은 일감을 쏟아낸 기업은 SK이노베이션이다. 자회사 SK엔무브와 SK온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각각 정리하고 하반기 합병 작업까지 마쳤다. LNG 발전사업을 유동화했고, 보령LNG터미널 지분도 매각했다. 현재는 미국 포드와의 현지 배터리 셀 생산공장 합작법인(JV) 청산 작업도 진행 중이다.
김앤장을 위시한 대형 법무법인과 삼일PwC,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골고루 일감을 받아 갔지만 내용을 감안하면 아주 만족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이 M&A 시장의 메기로 등장했다는 파격을 제외하면 상당수 거래가 회자정리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SK그룹 계열 전반에서 비슷한 작업이 되풀이되면서 리밸런싱 자체가 재계 트렌드로 확산하기도 했다. LG그룹은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와 진행하던 석유화학 사업조정이 틀어지면서 올해 해외 JV 청산과 비주력 자산 매각, 철수 작업을 서둘렀다. 현대차와 포스코, 롯데, CJ 등 주요 기업들이 매각자로서 움직인 사례가 많았다.
전방 AI 산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모멘텀이 내년에도 훈풍으로 작용하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삼성그룹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공개 사과문까지 발표하며 쇄신에 나선 지 1년 만에 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M&A 시장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플랙트그룹, 젤스, 그레일 등 M&A를 단행했고 아픈 손가락인 하만도 마시모 인수를 성사시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때 메모리 반도체 산업도 사상 최대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진입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지형까지 변화하면서 단숨에 종전의 위상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오랜 태스크포스(TF) 체제를 종료하면서 내부 M&A 담당들의 행보도 더 주목을 받고 있다.
SK그룹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역동성을 띠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가 내년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뼈아픈 거래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이다. SK텔레콤을 위시해 상장을 앞둔 SK에코플랜트 등 계열사들이 데이터센터(D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반도체 외 조선과 방산, 철강과 완성차까지 대기업 핵심 포트폴리오들도 대(對) 미국 협상에서 점점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정부는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키면서 마중물을 대기 위해 가용 자원을 총동원할 태세다. 한미 동맹 기반 공급망 재편에 초점을 맞춘 크로스보더 거래에서 글로벌 IB나 사모펀드(PEF) 운용사, 자문업계의 역할 역시 크게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도 다음 10년의 국운이 걸린 것으로 보고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독려하는 동시에 지원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라며 "조선·방산의 경우 안보 문제가 걸려 있어서 기대만큼 직접적인 일감 수혜가 밀려오진 않았지만 반도체를 중심으로 크로스보더 영역에서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사업조정이 얼마간 진행된 만큼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서 새 먹거리를 고민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올해 K-뷰티가 M&A 시장을 크게 달구었고 한국 화장품·의료기기·패션·식음료에 대한 각국 관심이 동시다발적으로 커졌다. 소비재 사업의 해외 진출 길이 크게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승계 고민이 한창인 대기업 그룹사들의 경우 이미 자문사들을 접촉하면서 관련 스터디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미국·유럽 유통 플랫폼에 올라탄 구다이글로벌이 단숨에 기존 화장품 대기업을 추월하는 걸 보면서 비슷한 작업들이 논의되고 있다"라며 "패션이나 식음료 등도 한국을 향하는 세계 각지의 관심을 잘만 받아내면 비슷한 성장곡선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내년 이후 극심해질 양극화나 치솟는 원달러 환율 등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다. 낙관적으로는 반도체가 2027년까지 AI 특수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으나, 전방 고객사들의 구매력이 바닥날지 모른다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석유화학 등 이제 구조조정 초입 단계인 저성장 산업이나 미국 리쇼어링 수요에 따른 제조업 해외 이전 타격까지 감안하면 M&A 시장 전체로 훈풍이 고르게 퍼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FI 상환, JV 청산에 유동화·자산 매각으로 한해 농사 마무리
대기업 전반 리밸런싱 확산 속 삼성전자 필두 분위기 전환
AI·반도체 훈풍에 정부도 적극 마중물…재계도 적극적 태도
해외서 새 질서 마련한 K-뷰티처럼…크로스보더 물밑 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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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17일 17:0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