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시장의 관심은 매각 조건이나 가격이 아닌, 완전히 다른 지점으로 옮겨갔다. 출자 철회, 자산 회수, 운용사(GP) 교체 가능성 등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빠르게 확산됐고, 논란의 중심에는 국민연금공단이 있었다.
국민연금은 이달 17일 이지스자산운용에 대해 "펀드 교체나 자산 회수 계획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실무진 선에서 정리해 전달했다. 내부 투자심의위원회도 열리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보면 사안은 일단 봉합된 셈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이번 일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 자산 점검, 회수 검토 언급, 조직 내 인사 변화 등이 시간차 없이 시장에 전달됐다. 결정되지도 않은 사안들은 마치 국민연금의 의지가 반영된 것 같은 신호로 읽혀졌다.
힐하우스는 계기였을 뿐…긴장의 시간은 길었다
국민연금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국내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 가장 오래되고 밀접한 LP–GP 관계 중 하나로 꼽혀왔다. 마곡 원그로브, 고양 스타필드, 역삼 센터필드 등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내에서도 상징성과 비중이 큰 자산들이 이지스를 통해 운용됐다.
관계의 기류가 달라졌다는 평가는 마곡 원그로브가 기점이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따른 공정 지연, 공실 장기화, 추가 자금 소요 가능성 등 복합 리스크가 겹치며 단일 자산의 문제가 국민연금 내부의 리스크 관리 이슈로 전이됐다.
이 과정에서 이지스의 자산 관리 방식과 보고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복수의 운용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불거진 논란은 개별 자산 이슈라기보다, 마곡 이후 해소되지 않은 이견이 누적돼 온 결과"라고 말한다. 이지스 운용 전반에 대한 국민연금의 신뢰에 균열이 생겼다는 해석이다.
부동산투자실 체제 변화…GP들 "관리 강도 체감상 변화"
2023년 12월을 전후로 안준상 실장이 국민연금 부동산투자실장으로 취임하면서 국민연금과 이지스운용 간의 관계는 보다 분명히 달라졌다. 캐나다왕립은행, 웰스파고, 삼성증권 등을 거친 외부 영입인사가 실장 직행으로 배치된 인사는 이례적이었다.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 받는 안 실장이 취임하면서 국민연금 부동산 투자 조직의 관리 기조도 달라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대형 자산을 중심으로 보고 및 의사결정의 관여도가 높아졌고, GP에 대한 관리 강도 역시 체감상 강해졌다는 후문이다.
운용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지스자산운용을 상대로 당시 자산총괄관리 임원이던 신동훈 고문의 역할을 문제 삼으며, 문제가 됐었던 마곡CP4만 관리를 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지스는 국민연금 대응과 관련해 조직 개편을 단행했고 자산 운용 성과를 둘러싼 양측의 관계는 단순히 성과 논쟁을 넘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비슷한 시기 이지스는 해외 LP 비중을 확대하며 국민연금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전략을 병행했다. 운용사로서는 자연스러운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이지만, 연금 내부에서는 핵심 GP와의 거리 조정으로 인식됐을 여지도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역삼 센터필드 두고 운용역에 보낸 이메일…CIO 교체 앞두고 '술렁'
논란이 다시 증폭된 직접적인 계기는 힐하우스 우협 선정 이후였다. 이 과정에서 최근 국민연금이 이지스 운용역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 알려지며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해당 질의는 역삼 센터필드 등을 중심으로 ▲감정평가 진행 시점과 방식 ▲자산 운용 현황 ▲관리 절차 관련 사항 등에 대한 확인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만 놓고 보면 자산 관리 차원의 정례적인 점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감정평가는 연례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공동 투자 구조에서 관리 절차 등을 확인하는 것 역시 절차상 이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 핵심 자산을 묶어 유사한 포맷의 질의가 전달됐고, 그 시점이 이지스운용 매각 이슈와 맞물려 시장에서는 이를 투자 회수나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 단계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민연금은 이사장 교체 이후 연말 CIO 교체를 앞두고 있다. 또 150조원 규모 상생펀드 구상 등으로 대체투자 전반에 대한 관리 부담이 커진 상태다. 기존 대체자산에 대한 점검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메일 내용은 단순 관리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GP 교체는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성과보수 정산, 평가 시점 문제, 자산 관리의 연속성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평가액 기준으로 성과보수를 지급한 뒤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경우 책임 소재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점을 이유로 국민연금 내부 준법감시 라인에서도 이관 과정의 리스크를 서원주 CIO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검토 단계의 논의가 외부로 알려져 시장 불안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관리 측면의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공식적으로 정리된 시점과 맞물려, 국민연금 부동산투자실 내부에서는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아시아부동산팀장과 유럽부동산팀장의 인사 이동이 있었다.
이번 사안은 특정 운용사의 적격성을 둘러싼 논란에 앞서 국민연금이라는 한국 자본시장의 절대적인 투자자의 발언이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다.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시장은 이미 한 차례 크게 흔들렸다.
한 부동산 운용사 대표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관리 차원의 절차였겠지만, 시장에서는 언제든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신호로 읽혔다"며 "그 간극을 관리하지 못하면 향후 어떤 GP도 비슷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곡 원그로브 이후 누적된 LP–GP 간 긴장
부동산투자실 체제 변화와 관리 강도 조정
정례 점검 메일이 증폭시킨 부동산 시장 우려
대형 LP 거버넌스 리스크, 업계 수면 위로
부동산투자실 체제 변화와 관리 강도 조정
정례 점검 메일이 증폭시킨 부동산 시장 우려
대형 LP 거버넌스 리스크, 업계 수면 위로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18일 17:1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