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도 반년 새 4000억 더…환율 고공행진에 해외 M&A '언감생심'
입력 25.12.31 07:00
환율 급등에 기업들 크로스보더 추진 비용도 늘어
플랙트그룹·ZF 모두 15억€…원화로는 수천억 차이
환율 단속 바쁜 정부, 외화 M&A 시선 곱지 않을 듯
  • 환율 고공행진이 이어지며 우리 기업이 해외 기업을 사는 M&A(아웃바운드)도 어려워지고 있다. 거래에 필요한 원화 자금이 많아진 것은 물론 정부 당국의 승인 획득, 외화 해외 반출의 난이도까지 높아졌다. 해외에서 성장 전략을 찾으려던 기업들의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올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300원 중반대까지 떨어지며 안정화하는 듯했으나 하반기 들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이 1500원에 육박했던 작년 계엄사태 이후와 유사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구간에서도 원화가 힘을 쓰지 못했다. 유로, 파운드 상대 환율도 비슷했다.

    정부가 환율 안정에 나섰다. '서학개미'가 주목받자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소통창을 닫고, 거래 혜택을 줄이며 백기를 들었다. 국민연금과 주요 수출기업도 시장 안정에 동원됐다. 지난 24일 정부가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 의지를 밝힌 후 원·달러 환율이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각이 있다.

  • 환율 불안은 국경간 M&A(크로스보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거래를 수행하기 위해 마련해야 하는 원화 자금이 늘어난 것부터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독일 플랙트그룹 인수 계약을 맺었고, 이달엔 자회사 하만이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의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사업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두 거래는 15억유로로 동일한데 7개월여 사이 원화 환산 규모는 크게 달라졌다.

    계약 당시 원·유로 환율을 기준으로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플랙트그룹이 약 2조2000억원, ZF 사업부가 약 2조6000억원으로 4000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실제 적용 환율은 다르고, 역외 거래라 국내 외환시장 영향도 크지 않지만 환율 변화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한 중견기업은 달러화 기반 아웃바운드 거래를 추진했는데 하반기 들어 환율이 불안정해지며 종결 불확실성이 커졌다. 수출 기업으로 달러화 현금흐름이 양호하고, 인수 자금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기로 했던 터라 거래가 성사됐지만 상당히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율 불안 때문에 기업의 해외 투자 거래가 당장 무산되지는 않지만 투자 조건 협상은 길어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달러 조달이 용이하거나 해외에 사업 기반을 두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곳들은 사정이 낫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 원화를 벌어서 이를 해외 M&A에 활용하려는 곳들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해외 M&A를 하면서 달러 빚을 많이 낸 기업도 부담이 크다.

    많은 기업들은 성장성이 둔화하는 국내 대신 해외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크로스보더 M&A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환율을 잡기 위해 고전하는 정부가 해외로 외화를 보내는 거래를 곱게 볼지는 의문이다. 그렇잖아도 미국 투자를 위해 천문학적인 달러를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환율 고공행진이 이어진다면 기업 입장에선 우리 정부나 경쟁당국의 승인이 필요한 거래는 추진하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외환 거래를 위해선 한국은행과도 소통해야 하는데 이 역시 난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출기업'이 외화를 쌓아두고 있는 것까지 지적하는 마당이다.

    이런 고민은 사모펀드(PEF)들도 비슷하다. 국내 경쟁 격화로 일부 운용사는 해외 시장을 살피기도 하지만 앞서의 이유들로 크로스보더 M&A는 부담스럽다. 가뜩이나 PEF에 대한 정부 여당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오히려 환율을 앞세운 외국계 PEF들에 안마당을 위협받는 상황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율 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달러화 기반의 M&A를 막으려 할 수도 있다"며 "해외에 기반을 두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업이 아니라면 해외 M&A를 추진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