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쏠 곳 없는 은행들, 부동산 PF에 다시 기웃거린다
입력 26.01.30 07:00
PF 대출 정책 중심에 선 저축은행
금융위, 상호금융 PF 규제 대폭 강화
사실상 PF와 거리 멀었던 시중은행들
가계·기업대출 둔화하자, 자산 쌓으려 PF대출에 관심
  •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 사업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신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은 찾기 어려워졌고, 그나마 본PF 전환을 앞두고 있는 사업마저 표류하는 모습이 속출하고 있다. 공급 부족으로 인해 수도권 주택가격은 급등하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무리한 사업 확장 대신 '돈 되는 사업'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분양 시장과 도시재정비·재건축 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가계 대출 규제는 금융회사, 특히 시중은행들의 고민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약1173조6000억원으로 11월 대비 2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월 단위 기준으론 가장 큰 폭의 감소세이다. 시중은행들은 지난해까진 실적 방어에 성공했지만, 실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계 대출'을 향한 규제의 빗장이 언제 풀릴지 모르기에 수익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은행들이 눈을 돌릴만한 기업대출 역시 증가세가 둔화하는 형국이다. 금융기관들의 기업대출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943조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9% 증가하는데 그쳤다. 은행을 비롯해 돈을 빌려주는 모든 금융기관들의 대출 증가세가 둔화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돈을 빌리는 수요 역시 예년보다 줄어들었다. 

    가계·기업 대출이 모두 요원한 상황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은행들은 다시금 부동산 PF 대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신규 PF 사업장이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사업성이 높고 리스크가 적은 초우량 사업장을 선별하려는 움직임이다. 1군 건설사가 시공을 맡아 책임준공과 책임분양을 확약한 사업장, 또는 대형 건설사 지급보증을 통해 사실상 리스크가 상쇄된 사업장 등은 시중은행들의 관심도가 상당히 높다. 실제로 1군 건설사가 시공과 분양을 책임지고 있는 서울시 대규모 재정비 사업장은 금융 구조를 재편하고 있는데, 이를 검토하는 은행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미분양 우려가 적은 서울 또는 수도권의 우량 사업장은 선순위 대출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다. 낮게는 7~8%, 통상 10% 전후로 형성되는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기업 대출보다 훨씬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금리는 평균 약 4.1%(한국은행 발표, 11월 기준)이다.

    불과 1~2년전만해도 금융기관들의 PF 대출은 사실상 막혀 있었다. 2023년 부동산 PF 위기설이 대두한 이후부턴 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들 모두 PF 대출의 문턱을 높였다. 

    정책적 방향성 역시 PF에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보다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부의 부실 사업장 정리 정책엔 은행과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전 금융업권이 동참했고, 일정 수준의 결과물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PF대출은 수신금리가 높은 저축은행들과 상호금융의 전유물이었다. 가계·기업 대출을 통한 안정적인 예대마진을 확보한 은행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PF대출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부실 PF사업장의 정리와 함께 시작된 PF대출 규제는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이 그 중심이었다. 정부는 저축은행의 부동산 브릿지론, 신규 토지담보대출 등을 일반대출이 아닌 조건이 까다로운 PF대출로 분류하며 규제에 나섰다. 

    상호금융권을 향한 규제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상호금융권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면서, 상호금융의 순자본비율을 산정할 때 부동산·건설업 대출에 가중치(110%)를 적용하고, PF 대출의 한도를 전체 대출액의 20%로 제한하도록 했다. 또 PF대출 모범 규준을 신설하는 등 대출 리스크 관리를 체계화하기로 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이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게 된 PF 시장. 시중은행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은행들의 PF 출자가 사업성이 양호한 사업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순기능은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대출 자산을 공격적으로 늘리려는 움직임으로 변모한다면 일부 우량사업장에선 역마진을 감수한 은행들의 출혈경쟁이 발생하는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