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커진 김치본드…고환율 장기화에 한국은행도 장려
입력 26.02.13 07:00
여전사 이어 일반 기업까지…조달 창구 다변화
롯데물산, 1억달러 모집에 3억달러 주문
외환 수급 불균형에 한국은행 정책 선회
  • 국내에서 발행되는 외화표시 채권인 '김치본드'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외화 조달 창구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여신전문금융사에 이어 일반 기업까지 발행 대열에 합류하면서 그간 위축됐던 김치본드 시장이 정책 환경 변화와 맞물려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물산은 최근 3년 만기 1억달러 규모 김치본드 발행에 나서 3억달러의 주문을 확보했다. 모집 예정액의 3배에 달하는 수요가 몰리며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최종 금리는 미국 무위험지표금리(SOFR)에 1.45%를 더한 수준으로, 표면 이율은 5.262%다.

    앞서 현대카드(2000만달러)와 현대캐피탈(5000만달러) 등 여전사들이 잇따라 김치본드 발행에 나서며 투자 저변을 다진 데 이어, 일반 기업까지 투자 수요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민간기업이 공모 김치본드를 발행한 건 지난 2011년 이후 15년 만이다.

    시장에서는 고환율 환경이 이어지면서 외화 조달 창구로서 김치본드가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행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 창구를 다변화할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내 크레딧에 투자하면서 외화 자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적 환경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의 김치본드 투자 제한을 해제했다. 2011년 7월 도입된 해당 규제는 원화로 환전해 사용할 목적으로 발행된 김치본드에 대해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의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당시 일부 김치본드가 외화대출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관리 필요성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였다.

    실제로 투자 제한 도입 직전인 지난 2011년 6월 말 기준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의 김치본드 투자 잔액은 165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규제 이후 잔액은 빠르게 축소돼 지난해 1억6000만달러 수준까지 감소했다. 사실상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환 수급 불균형이 두드러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환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내로 달러 자산을 유입시키는 통로를 넓힐 필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김치본드 투자 제한을 해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당시 한국은행은 이번 조치가 외화 유동성 사정 개선, 원화 약세 압력 완화 등 외환 수급 불균형 해소에 기여하는 한편 김치본드 시장 활성화 등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여전업권를 중심으로 추가 발행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신한카드, 우리카드, 하나카드 등 주요 카드사들도 외화채 발행을 검토 방침을 내부적으로 세워둔 상태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현대카드가 김치본드 발행으로 사실상 벤치마크를 조성한 만큼, 조달 여건만 맞는다면 다른 카드사들도 충분히 시장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간 기업의 참여 확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롯데물산 사례에서 보듯 투자처 다변화 차원에서 김치본드를 활용하려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해외 조달 대비 절차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고, 국내 투자자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책적 제약이 해소된 데다 실제 수요가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외화 조달 수단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면서도 "환율 변동성과 금리 환경, 발행사의 실질적인 외화 수요 등이 맞물려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