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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회의 문턱을 넘은 1·2차 상법개정안이 올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정관을 손보고 이사진을 재편해야 하는 기업들은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한 개정 상법으로 인해 기업 내 이사진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독립된 사외이사를 영입해야 하는 기업들의 수요는 여전히 많지만, 사외이사를 자원하는 인력 풀(POOl)은 과거와 달리 크게 줄어들었단 평가다. 정권이 바뀐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전 정부 관료 출신인사, 즉 전관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큰 형국이다. 결국 법조계와 학계 또는 다른 기업체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인사들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잦아지고 있지만 이 역시 과도한 겸직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들은 9월부터 감사위원 중 2명 이상을 분리선출을 통해 선임한 인사로 채워야한다는 것이 가장 큰 현안이다. 분리선출을 통해 이사를 선임하면 대주주의 의결권은 최대 3%로 제한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적은 다수의 주주들 의향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기존엔 1명의 감사위원만 의무적으로 분리선출해야 했지만 9월10일 이후부턴 감사위원회에 2명 이상의 분리선출 감사위원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삼성그룹 계열사는 새로운 사외이사를 영입해 이사진을 확대하는 것보다 기존의 사외이사를 재선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호텔신라, 삼성생명 등은 현재 사외이사 가운데 각각 1명씩만 분리선출을 통해 선출한 감사위원을 선임하고 있다. 개별 회사들은 이번 주총을 통해 임기가 각각 1~2년가량 남은 사외이사를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선출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후보자들이 이번 주총에서 재신임을 얻게 되면 임기 만료 기간은 수년씩 늘어나게 된다.
현대차, LG, SK 등 주요 그룹 가운데서도 현재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인사를 감사위원으로 분리선출하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한 차례 주총을 통해 주주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인사를 후보로 내세워 3%룰에 의한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새로운 사외이사 영입이 여느때보다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막론하고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게 이번 주총의 가장 큰 화두이다"며 "2인 이상의 감사위원을 반드시 분리선출해야하는 올해 주총 시즌엔 기존 이사진을 재신임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삼성E&A 등 삼성의 제조 계열사들은 이사진 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번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하는 이사의 후임을 선임하지 않는 방식으로 삼성물산은 사외이사 1명을, 삼성E&A는 사내이사 1명을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사진 축소는 경영 효율화, 지배구조의 간소화, 비용 통제 등의 목적으로 추진된다. 과거엔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이 이사진을 축소한 전례가 있다.
최근 들어선 집중투표제 도입이 가시화하며 비대한 이사회를 운영할 유인이 줄었단 평가가 나온다.
집중투표제는 일정 규모 이상 자산을 보유한 회사들은 의무적으로 도입해야하는 제도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삼성E&A, 삼성바이오로직스, 에스원, 기아, LG전자, LG CNS,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카카오, LS일렉트릭 등 다수의 기업들이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정관을 변경한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기업은 개별 주주들에게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야 한다. 일부 기관들과 소액주주가 연대하면, 대주주 의사에 반하는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수도 있다. 선임해야하는 이사의 수가 늘어날수록 대주주의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커지는 구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장 이사회를 축소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뚜렷하지 않지만, 집중투표제가 정착하는 내년부턴 사외이사진을 줄이려는 시도가 대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미 이사회를 개편한 기업들 가운데선 임기 시차제를 도입해 경영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걷어내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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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6.03.03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2월 25일 07:00 게재
개정 상법 9월 시행, 감사위원 2명 분리선출 의무
사외이사 후보군 줄고, 이사회 의무는 늘어
임기 남은 이사진, 감사위원으로 다시 뽑는 기업들
집중투표제 도입도 가시권…이사회 축소 움직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