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압박 다음은 기관…'중립도 리스크' 스튜어드십 강화에 운용사들 긴장
입력 2026.03.04 07:00

자율 규범에서 감독 체계로…스튜어드십 '법제화' 수순

연기금은 여력, 운용사는 부담…의결권 프로세스 시험대

계열 운용사 이해상충 관리 '현미경 점검' 가능성 대두

상법·공개매수 이어 기관 책임까지…자본시장 전방위 개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상법 개정에 이어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입법이 본격화되면서 자산운용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기업의 주주환원 정책과 지배구조를 직접 겨냥한 3차 상법 개정 논의가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앞두고 있어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가운데, 이번에는 의결권 행사 주체인 기관투자자에게 '행동'과 '설명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 변화가 추진되고 있어서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금융회사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률에 명문화하고, 그 이행 여부를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금감원은 매년 수탁자 책임 활동을 평가해 공표할 수 있고, 금융회사는 평가 결과를 공시해야 한다.

    그간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율 규범 성격이 강했다.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원칙을 공개하고 활동 내역을 공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스튜어드십 이행은 감독·평가 체계로 편입된다. 단순히 찬반 표결 결과를 넘어, 의결권 행사 기준과 판단 근거, 내부 의사결정 절차가 점검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기업보다 자산운용사가 먼저 부담을 체감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상법 개정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통해 기업 의사결정을 압박하는 장치였다면, 이번 개정안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금융회사, 특히 자산운용사의 내부 통제 체계를 들여다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긴장하는 건 당연하지만, 실질적으로 '검사'를 받는 쪽은 기관"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립도 리스크'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다수 운용사는 합병·물적분할, 이사 선임, 보수한도 승인 등 민감한 안건에서 '관망' 내지 최소 개입 전략을 취해왔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연례 평가 대상으로 전환되면 단순한 중립이 아니라, 왜 찬성했고 왜 반대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과 내부 기록 관리가 요구될 수 있다.

    연기금·공제회 등 대형 기관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과 내부 위원회 체계를 비교적 정교하게 구축해왔다는 평가다. 반면 중소형 자산운용사 상당수는 전담 인력과 프로세스가 대형사만큼 체계화돼 있지 않아 부담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형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 사유를 세부적으로 정리하고 회의록과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관하는 시스템까지 요구되면 인력·시스템 보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 계열 운용사도 예외는 아니다. 계열 은행·증권·보험사와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독립성과 이해상충 관리가 보다 엄격히 점검될 가능성이 있다. 그간 계열사 안건에서 소극적 태도를 유지해온 관행이 유지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입법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중복상장 방지 등 최근 여권이 추진 중인 자본시장 제도 개편과 맞물려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압박하는 동시에,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하는 양면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는 향후 시행령에서 구체화될 보고 항목과 평가 기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결권 행사 내역의 세부 공개 범위, 내부 위원회 운영 기준, 이해상충 관리 체계 등이 어디까지 명문화되느냐에 따라 실질적 부담 수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단순한 공시 강화에 그치지 않고, 운용사 간 내부통제 역량 격차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이 '평가'와 '공표'의 대상이 될 경우, 책임투자 체계를 갖춘 대형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형사 간 신뢰도 차이가 시장에서 가시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상법 개정이 기업의 의사결정을 압박하는 장치였다면, 스튜어드십 강화는 기관투자자의 책임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후속 수순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자본시장 개편의 초점이 기업에서 기관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운용업계의 대응 전략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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