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회장 연임 문턱 높이면 “ISS 수혜”?…JP모건은 거래 끊었는데
입력 2026.03.19 07:00

금융지주 주총, ISS 권고에 좌우되나

연임 특별결의 도입 땐 자문사 영향력 확대 우려

美 JP모건은 자문사 배제…글로벌선 재평가 움직임

  •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금융권 주주총회 시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행보였다. ISS가 주요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안건에 이례적으로 “전원 찬성” 의견을 내면서다.

    사법 리스크 등을 이유로 반대를 권고했던 과거 주총과 달리, 이번 ISS의 결정으로 시장에서는 회장들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됐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내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ISS의 권고가 주총 결과를 결정짓는 강력한 변수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해외 자문사들의 영향력이 이처럼 확대된 배경에는 2016년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와 ESG 경영 확산이 자리 잡고 있다. 기관투자가가 의결권 행사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하는 ISS의 권고는 가장 안전하고 객관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특히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국내 금융지주들에 더욱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지난 1월 말 기준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평균 외국인 지분율은 62.89%에 달한다. KB금융이 76%로 가장 높고 하나금융(68%), 신한지주(60%), 우리금융(48%) 순이다.

    국내 사정에 어두운 해외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은 글로벌 자문사의 보고서를 절대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삼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ISS 권고와 반대되는 결정을 하려면 내부 기록으로 명확한 근거를 남겨야 하므로, 이를 거스르는 운용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주사들이 해외 IR(기업설명회)에 공을 들이더라도 실제 주총 국면에서는 자문사의 권고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지배구조 개선안이 자칫 소수 자문사의 영향력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는 내주 초 회장 연임 안건을 주총 특별결의로 격상하는 내용 등을 담은 개선안을 발표할 전망이다. 연임 문턱이 높아질수록 외국인 표심을 쥐고 있는 자문사의 캐스팅보트 역할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물론 금융지주 회장들이 임기 중 쌓아온 해외 주주들과의 네트워크 덕분에 연임 과정이 우려만큼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용병 전 신한지주 회장이나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사례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총 표 대결에서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는 드물다.

    그럼에도 자문사 권고는 여전히 중요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

  •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의존의 적절성이다. 글로벌 자문사의 분석 역량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국내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약 30명의 전문 인력이 300여 개 기업을 밀착 분석하는 반면, ISS 등 글로벌 자문사는 국내 별도 오피스도 없이 3~4명의 인력으로 한국 시장을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총 시즌에만 단기 인턴을 대거 투입하는 구조다. 개별 기업의 특수성보다는 법적 이슈 등에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는 “의결권 자문사들이 한정된 인력과 시간 탓에 ‘수박 겉핥기’ 식 분석을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실제 역량에 비해 영향력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뒤따르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논란 속에 글로벌 시장에서는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올해 초 JP모건 등 일부 금융사는 의결권 자문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독자적인 의결권 행사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문사의 독점적 지위와 편향성에서 벗어나 투자의 자율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처럼 수천 개 기업에 투자하는 기관이 외부 권고를 참고하는 구조는 현실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식인지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며 “인적·물적 인프라가 미비한 해외 자문사의 판단에 국내 금융 지배구조가 좌우되는 상황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배구조 선진화라는 취지와 달리, 특별결의 체제 하에서는 경영진이 외국인 주주의 입맛에 맞는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특별결의가 도입되면 경영 이슈가 장기적 성장보다는 주주들의 단기적 마음을 사기 위한 방향으로 쏠릴 수 있다”며 “수익률에 집중하는 외국인 주주 특성상 장기 경영 측면에서는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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