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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이한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국민연금의 강화된 의결권 행사 기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에 근거해 각 기업이 제출한 안건을 세밀하게 검토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주총에서 미래에셋·NH투자·키움·대신증권 등 주요 증권사가 올린 대표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자사주 처분 및 정관 변경 안건에 대해 잇따라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흐르는 모양새다.
23일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내역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24일 예정된 미래에셋증권 주주총회와 26일 열리는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찬반 의사를 확정했다.
이번 검토 대상이 된 증권사 중 전 안건 찬성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주총 현장에서 국민연금이 '현미경 검증'을 통해 주주 권익 보호 수준을 직접 재점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래에셋증권 김미섭 대표와 대신증권 양홍석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힌 점이다. 국민연금은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 권익 침해 이력에 대한 감시 의무 소홀 등을 주요 배경으로 들었다.
김미섭 대표의 경우, 과거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 재직 시절 계열사 골프장 거래와 관련해 특수관계인 이익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됐던 점 등이 거론된다. 양홍석 부회장 역시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 당시 경영진으로서 내부통제 체계 구축 미흡에 대한 책임이 언급됐다.
금융위원회가 2023년 11월 양 부회장에게 '주의적 경고' 조치를 내린 점이 주요 근거로 꼽히나, 유사 사례에서 타사 경영진의 중징계가 행정소송을 통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라 연금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유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자본시장의 화두인 자사주 관련 안건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미래에셋증권은 ‘경영상 필요’를 이유로 자사주를 제3자에게 팔 수 있도록 정관을 바꾸려 했는데, 국민연금은 이에 반대했다. 대주주 판단만으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일반 주주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다. 특히 개정 상법의 예외를 인정하는 구조가 주주가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신증권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다. 자사주를 살 때는 ‘주가 안정’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임직원 보상에 쓰겠다고 계획을 바꾼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국민연금은 “처음 공시한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간 큰 문제 없이 통과되던 이사 보수한도 안건도 이번에는 제동이 걸렸다.
미래에셋증권·키움증권·대신증권 모두 보수한도 수준이 경영 성과나 실제 보수 금액에 비해 과다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받았다. 특히 대신증권의 경우, 총 보수한도 100억 원 가운데 양홍석 부회장 1인에게 약 54억 원이 지급돼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보수 수준과 배분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보수한도와 실제 집행액 간 괴리가 크다는 점도 눈에 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사 7명에 대한 보수한도를 100억 원으로 제시했지만, 지난해 실제 지급액은 약 49억 원에 그쳤다. 키움증권 역시 보수한도 70억 원 대비 실제 지급액은 21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설정된 한도와 실제 지급액 간 차이가 큰 점을 감안할 때, 관행적으로 높은 수준의 보수한도가 설정돼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외에, 지배구조 및 정관 변경과 관련한 디테일한 공세도 이어졌다. 키움증권은 사외이사 연임 임기를 1년에서 2년으로 늘리고, 전체 재임 기간도 최대 6년까지 확대하려 했지만 국민연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임기를 늘리면 이사회 독립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NH투자증권의 정관 변경안도 국민연금의 반대에 직면했다. 신주 발행 한도를 기존 30%에서 50%로 확대하려 한 데 대해, 국민연금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이 약해지고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봤다.
이 같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행보에 증권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향후 주총 안건 수립 과정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특히 오너 일가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은 증권사일수록 국민연금의 표심이 주총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지주가 약 60%의 지분을 보유한 NH투자증권이나, 다우기술이 약 42%를 들고 있는 키움증권은 주총 안건 통과에 큰 부담이 없는 구조다. 반면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오너 일가 지분이 약 16% 수준에 그치는 대신증권은 연금에 행보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증권사들도 주총 안건을 마련할 때 일반 주주 보호를 보다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 2026.03.24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3월 23일 14:39 게재
주요 증권사 안건 전반에 ‘현미경 검증’ 강화
미래에셋·NH·키움·대신 주요 안건 줄줄이 제동
지분구조 따라 국민연금 표심 영향력 확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