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가을걷이' 걱정하는 자본시장…금리·규제·전쟁 삼중고에 시름
입력 2026.04.02 07:00

연초 기대 빗나가며 딜 파이프라인 급격히 위축

금리 상승에 자금 조달 부담…투자 판단 보수화

규제 강화·전쟁 변수까지 겹치며 불확실성 증폭

IB·금융사, 대형 거래 실종에 연말 성과평가 비상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제 막 1분기를 지났지만 자본시장에선 벌써부터 올해 성적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꿈틀대던 거래들이 본격화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으나 연초효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장금리 상승과 각종 규제 여파가 본격화하며 시장 참여자들이 위축되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로 기존의 예측이 무의미해진 만큼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기까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하반기 들어 대형 M&A 계약들이 이어졌다. SK와 LG 등 대기업의 사업재편 및 자금조달성 거래가 잇따랐고, 거래 실적을 채우려는 사모펀드(PEF)들도 분주한 행보를 보였다. 탄탄한 국내 정보망을 갖춘 회계법인과 해외 네트워크를 앞세운 투자은행(IB) 모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시장에 온기가 돌면서 미뤄둔 거래들도 들썩였다. 해가 바뀌면 거래가 쏟아질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1분기 M&A 거래 규모는 부진했던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소폭 줄어든 모습이다. IB가 참여한 주요 거래는 대한항공의 대한항공씨앤디서비스 인수, 팬오션의 SK해운 탱커선사업 인수 정도에 그쳤다. 살림이 나아진 대기업들이 간만에 대형 거래의 주역으로 떠오른 점은 반가웠지만 추세적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기업들은 승승장구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당장 실적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시장 금리가 고개를 들면서 재무구조를 관리하는 것이 시급해졌다. 신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도 연말이라서, 인사 시즌이라서, 사업계획을 마련 중이라서, 주주총회 시기라서 등 다양한 이유로 계획을 차일피일 늦추고 있다. 일부 기업은 미국-이란 전쟁 이후 사업조정 거래를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1분기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자문사들은 확보해 둔 잠재 거래와 현실성 등을 따져 한 해 농사를 가늠한다. 그러나 대부분 자문사들이 성사 가능성이 큰 신규 거래를 많이 확보하지 못한 분위기다. 파이프라인 상당 부분이 작년부터 이어졌거나 난이도가 높은 것들이다. 노란봉투법 영향이 크거나 업황이 애매한 신규 거래는 자문 요청이 와도 품만 들까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자문사들의 시선은 '될 것 같은' 혹은 '해야만 하는' 거래로 모이는 모습이다. IB들은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전력 인프라로 주목받은 서울전선 매각은 삼정KPMG와 삼일PwC가 서로 먼저 원매자를 확보해 성과를 내려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주식자본시장(ECM)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신사나 구다이글로벌 등 대어를 제외하면 시장의 주목을 받을 만한 거래가 많지 않다. 정부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하면서 대기업 발 상장 거래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재무적 투자자(FI) 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기업들은 더더욱 신규 사업에 눈을 돌리기 어렵다.

    증시는 작년 하반기 이후 호황으로 전환했다. 이는 반도체, 방산 등 일부 산업의 견인에 따른 것이다. 증시가 고공행진하면서 잠재적인 매도자들의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실질적인 거래배수는 제자리 걸음이다. 실제로 증시에 입성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M&A가 성사될 상황도 아니다. 거래 당사자와 자문사들의 시각 격차만 부각되는 양상이다.

    한 IB 관계자는 "최근 수행하고 있는 거래들은 작년부터 이어지거나 난이도 높은 것들이고 새로 성사될 만한 것들이 많지 않아 걱정"이라며 "본사에서도 한국 증시가 좋다는데 왜 별다른 성과가 없느냐 지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M&A 자문사 관계자는 "올해는 시장이 살아날 것이라 기대했는데 지금까진 거래가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례들만 많다"며 "M&A는 천수답이라 자문사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이 상태라면 연말에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사에서는 IB 부문의 존재감이 줄었다. 주식 거래 폭발에 자산관리(WM)나 세일즈앤트레이딩(S&T)의 이익 기여도가 폭발하고 있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등으로 기업금융에 쓸 자금은 늘었지만 좋은 투자처는 한정적이다. 신중하게 자금을 집행하자니 연말 고과평가가 걱정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자니 가격 왜곡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채권자본시장(DCM) 역시 매크로 환경 변화에 숨죽이고 있다. 채권을 받아줄 자금이 증시로 대거 이동하면서 기업들의 채권 발행 길이 좁아졌다. 자산운용사를 통해 채권에 투자한 수익자 중에서도 환매를 희망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은 주요국보다 금리 변동성이 큰 상황이라 글로벌 시장금리가 급등하면 일거에 신용경색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PEF들은 금리 상승세에 레버리지 전략을 쓰기 어려워졌다. 선순위 대출 금리는 국내 7%, 해외에선 9%까지 오르는 양상이다. 국내외에서 경영권인수(바이아웃) M&A가 뜸해졌다. 한 PEF가 추진 중인 대형 M&A는 해외 인수자가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으며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전쟁 장기화로 석유화학 제품 공급이 차질을 빚으며 소비재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실적엔 비상등이 켜졌다.

    규제는 강화 일로다.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 이후 PEF 평판 위험이 커졌고, 이는 정부와 여당의 규제 정책으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구설에 오른 PEF 운용사의 거래에 관여하길 꺼리고 있다. 올해 불허 결정이 난 롯데렌탈 M&A도 '경쟁 제한성' 자체보다는 정부 정책을 우회하려했던 PEF의 행보가 더 큰 걸림돌이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PEF 자문사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물론 PEF와 관련된 대형 거래가 아주 없지는 않다. 대부분 PEF끼리 주고 받는 형태거나, 드라이파우더를 소진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일부 거래에선 PEF간 각축전이 벌어지는데 결과는 '누가 전략적이냐'보다는 '누가 자금 소진이 급하냐'에 따라 갈라지는 양상이다. '출자자(LP)의 관심을 얻기 위해 백지수표를 던지는 꼴'이란 비판도 나온다.

    PEF와 밀접한 인수금융은 '역사적 기근'을 겪고 있다. 연말에서 연초에 추진되는 거래가 있어야 올해 실적을 쌓을 수 있는데 올해는 작년에 비해 그런 움직임이 없다. 신규 거래는 뜸한데 재무약정 위반을 허용해달라는 요청(waiver)은 이어지고 있다. 금리 상승 국면이니 리파이낸싱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연간 실적을 만들려면 지금쯤 조단위 거래 몇 건은 협상하고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그런 건이 전혀 없다"며 "거래가 너무 없다 보니 올해 실적 달성은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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