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성과급 합의에 가려진 HBM 착시와 낸드 위기
입력 2026.06.02 07:00

Invest Column

삼성·SK 모두 HBM 전사적 역량 집중

낸드플래시 시장 지배력은 약화

단기적 합리성이 뼈아픈 부메랑 될 수도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을 앞세워 사상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에 힘입어 시장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HBM에 쏠려 있다.

    화려한 실적 잔치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본시장과 업계 일각에선 서늘한 위기감이 감돈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지배력 상실이라는 외부적 리스크와 성과 보상을 둘러싼 내부 조직의 균열이 동시에 맞물리며 이른바 '양쪽 다 잃는(Lose-Lose)'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두 회사는 낸드 생산 비중을 줄이고 HBM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낸드 수요가 부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AI 추론 캐시가 대용량 스토리지를 요구하며 30TB TLC 기업용 SSD 가격이 9개월 만에 260% 폭등할 정도로 수요는 넘쳐난다. 그럼에도 낸드 공급을 억제하는 이유는 철저한 '자본 배분(Capital Allocation)' 논리 때문이다.

    한정된 팹(Fab)과 인력을 어디에 쓸 것인가. HBM3E의 단위 웨이퍼당 수익성은 낸드 대비 5~7배에 달한다. 기업 입장에선 2~3년 주기의 HBM 슈퍼사이클 동안 마진율이 압도적인 곳에 자원을 몰아넣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재무적 의사결정'이다.

    문제는 이 단기적 합리성이 훗날 뼈아픈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메모리 산업에선 한 번 내준 캐파 점유율을 되찾기 위한 진입 비용이 비대칭적으로 크다. 한국이 HBM에 취해 낸드를 양보하는 사이, 중국 YMTC는 라인을 풀가동하며 '학습 곡선(Learning Curve)'을 타고 있다. 1~2년 뒤 한국이 다시 낸드 캐파를 늘리려 해도 장비 발주부터 양산까지 2년이 허비되며, 그 사이 글로벌 고객사들은 YMTC 생태계에 록인(Lock-in)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 조직의 원심력'이라는 복병까지 등장했다. 최근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삼성전자의 성과급 관련 투표 결과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노사의 '2026년 임금교섭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73.7%의 찬성률로 27일 최종 가결됐다. 반도체(DS) 부문이 주축인 초기업노조의 압도적인 찬성표가 이뤄낸 결과다. 이번 가결로 DS 부문은 기존 성과급(OPI)에 더해 상한 없이 영업이익의 10.5% 규모 특별성과급을 자사주로 받을 전망이다.

    표면적으로는 노사 갈등이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각 사업부 간 '노노(勞勞) 갈등'의 뇌관을 건드린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본의 쏠림은 필연적으로 '보상의 쏠림'을 낳는다. 회사의 모든 자원과 스포트라이트가 HBM 등 특정 선단 공정에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투자가 후순위로 밀린 낸드나 파운드리 등 타사업부 구성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사업부별 철저한 독립 채산제와 성과주의가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자원 재배치 시기와 맞물리면서, 조직 전체의 결속력을 갉아먹는 갈등 요소로 변질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사내 정치를 넘어 치명적인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진다. 반도체는 결국 '사람'이 하는 산업이다. 자본 효율성을 이유로 낸드 라인의 투자를 줄이고 엔지니어들의 사기마저 꺾인다면, 훗날 HBM 사이클이 끝나고 다시 낸드 시장으로 돌아가려 할 때 이를 실행할 '맨파워' 자체가 유실될 수 있다. 과거 일본 반도체가 D램을 포기하고 시스템 반도체로 틀었다가 몰락한 것도, 결국 잃어버린 기술 인력과 학습 곡선을 다시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에 대비는 할 것이다. QLC(쿼드레벨셀) 낸드 전환과 고부가 eSSD 시장 집중을 통해 동일 캐파에서 비트(Bit) 출하량을 늘리며 방어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2027~2028년쯤 중국의 추격으로 HBM의 마진마저 꺾이는 시점이 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략적 자원 집중이 낳은 거대한 착시 효과 속에서, 자칫 미래의 캐시카우와 핵심 인재를 동시에 잃어버리는 '복합 위기'가 싹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 반도체 공룡들은 냉정하게 되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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