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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자금 유입의 성패가 상품 차별성을 넘어 '채널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상장하는 것만으로는 자금 유입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증권사와 은행 등 자산관리(WM) 부서를 둘러싼 운용사 간 영업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ETF 시장 규모가 400조원을 앞두는 등 빠르게 확대되면서 실제 자금 유입의 접점에 있는 채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퇴직연금(DC, IRP) 계좌의 자금이 본격적으로 ETF 시장에 유입되며 WM채널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현장에선 이미 채널 영업이 '주력 업무'로 자리 잡았다. 자산운용사 운용역이 직접 마케터와 함께 지역 영업점을 돌며 프라이빗뱅커(PB) 유치에 나서고, 부장급 이상 임직원들도 증권사와 은행 WM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교육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전략본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들어 영업일 기준으로 2~3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은행이나 증권사를 돌며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며 "PB들이 ETF를 이해해야 고객에게 설명할 수 있어 이들에 대한 교육 필요성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순 마케팅을 넘어 '라인업 진입 경쟁'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은행과 보험 채널은 ETF가 자동으로 노출되는 구조가 아니라 내부 심사를 거쳐 상품을 선별한다. 증권사는 ETF가 상장되면 시스템에 자동 반영되지만, 은행과 보험은 상품의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취급 여부를 결정한다.
결국 운용사 입장에선 WM 채널에 상품을 등록시키는 것이 자금 유입의 출발점이 된다. PB 추천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으면 개인 투자자의 직접 매수를 제외하고는 유입 경로 자체가 제한된다. 업계에선 ETF 경쟁에서 수익률만큼이나 PB 추천 리스트 포함 여부가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자금 유입 구조 변화가 있다. 과거 개인 투자자의 직접 매수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퇴직연금과 자산관리 계좌를 통한 유입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가 핵심 투자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WM 채널의 영향력이 커지는 구조다.
실제 퇴직연금 시장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삼성·한국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 3곳의 퇴직연금 계좌 내 ETF 보유액은 2024년 13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25조9000억원으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연평균 약 15% 성장해 2030년 1000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10%대에 머물고 있는 주식(ETF) 비중이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될 경우, ETF로 유입되는 연금 자금은 구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기관 수급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일부 확인된다. 연초 이후 기관 순매수 상위 ETF를 보면 미국 장기채, 커버드콜, 배당·인프라 등 변동성이 낮거나 현금흐름이 기대되는 상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 'TIGER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 '미국배당·인프라 ETF' 등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AI·전력 인프라 등 장기 성장 테마로의 자금 유입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은행·보험 등 WM 채널을 통해 유입되는 자금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해당 채널 특성상 안정성과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자금이 중심을 이루면서, 일부는 성장 테마를 병행하는 형태의 포트폴리오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도 변화도 채널 경쟁을 자극하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투자자가 금융사를 옮길 때 기존 상품을 유지하려면 해당 금융사의 WM 라인업에 동일 상품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금융사들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ETF 라인업을 확대하고, 운용사들은 이 과정에서 채널 진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ETF 상품 간 차별화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채널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동일 지수를 추종하거나 유사 전략을 내세운 상품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성과만으로 자금을 끌어오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이 경우 최종 투자자와 접점에 있는 WM 채널의 추천 여부가 자금 흐름을 좌우하게 된다.
결국 ETF 시장의 경쟁 구도는 '상품력'에서 '유통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제 ETF는 상장으로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WM 안에서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인정받아야 경쟁이 시작된다"며 "채널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상품도 자금이 붙기 어렵다"고 말했다.
입력 2026.04.03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3월 29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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