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발을 뺐고, 풍산의 승계 고민은 더 커졌다
입력 2026.04.10 07:00

탄약업체 '풍산' 방위사업부문 매각

유력 원매자 한화에어로 공식 불참 선언

솔루션 리스크, 방산 독식 우려 등 여론 영향?

방위사업법에 가로막힌 풍산 승계 고민 깊을 듯

  •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풍산 방산부문 인수 검토를 공식적으로 중단했다. 이번 M&A 가장 유력한 원매자로 꼽혔던 한화그룹이 인수전에 발을 빼면서 풍산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당초 한화그룹이 방위사업부문(탄약사업부문) 인수에 성공할 경우, 자주포에서부터 탄약까지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지상전 무기 체계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항공·우주, 지상 및 해상의 주요 전투 무기(부품)에 이어 소모품인 탄약까지 수직계열화에 성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인 탓에 한화그룹의 인수의지는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화그룹과 풍산이 돈독한 거래 관계를 이어왔단 점도 한화의 인수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배경중 하나였다. 인수주체로 거론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하는 K9 자주포엔 155mm 포탄이 쓰이고, 해당 155mm 포탄은 풍산이 납품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인수 검토 중단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다만 계열사들의 대규모 유상증자 논란에서 불거진 주주들의 불만, 사기업 한 곳이 우리나라 방위 산업 전반을 잠식해 나간다는 부정적인 시선, 한화그룹이 진행한 일련의 작업들이 수 년간 진행되온 오너가 승계와 맞물려 있단 부정적인 여론 등이 대규모 M&A를 추진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갑작스럽게 발표한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과정은 매끄럽지 못한 형국이다. 대규모 유상증자 발표의 시기와 방법에 주주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한화는 120% 초과청약에 참여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화그룹을 향한 주주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었단 지적이다. 

    결국 9일 금융감독원은 한화솔루션에 증권신고서를 정정할 것을 요청했다.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의 제동으로 2조원이 훌쩍 넘는 자금조달 전략에도 노란불이 켜졌는데, 청약일을 비롯해 회사가 기존에 계획했던 신주 발행과 관련 일정·조건 등을 고수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한다.

    한화그룹에 대한 투자자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조금씩 누적돼 왔다. 오너회사인 한화에너지가 ㈜한화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과정과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규모 증자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 한화의 풍산 사업부 인수 역시 방산부문의 수직계열화의 완성, 김동관 부회장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퍼즐로 여겨지기도 했다. 

    오는 7월 ㈜한화는 인적분할을 통해 김동관 부회장과 김동선 부사장 각각의 주력 계열사를 나누는 작업을 추진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솔루션을 중심으로 한 방산·우주항공·조선·해양·에너지·케미칼 부문과 3남인 김동선 부사장이 구심점이 되는 테크솔루션·유통 부문을 나누는게 핵심이다. 풍산 방산부문 인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그룹 내 존재감과 위상을 공고히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 거래가 한화그룹의 찬스임에는 분명했지만,투자자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한화그룹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방위사업분야에 대체불가능한 독과점 기업이 탄생하는 걸 정부가 용인할지도 미지수였다. 솔루션 유상증자를 비롯해 각종 논란들로 인해 금융당국이 한화그룹에 대한 강경한 스탠스로 돌아선다면, M&A와 자금조달 그리고 지배구조개편까지 매끄럽게 진행되기 어렵단 점도 한화그룹은 고려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그룹은 민영화 논의가 끊이질 않는 한국항공우주(KAI)의 유력한 원매자로 거론된다"며 "방산기업의 M&A가 진행될 때마다 (한화그룹의) 독과점과 밀어주기 논란이 끊이질 않을 것이란 점도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유력한 원매자 한화의 불참선언으로 풍산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우리나라 최대 탄약 제조사이자, 방위 산업의 주요 축인 풍산의 사업부 매각은 재계의 가업승계와 구조개편에 대한 경영주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화그룹이란 원매자의 등장으로 풍산은 사업부 매각에 대한 효용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 마련에 한창이었는데, 이젠 M&A의 흥행부터 걱정해야하는 상황에 빠졌다.

    우리나라의 사실상 유일한 탄약제조업체인 풍산이 알짜인 방위사업부분(탄약부문)을 떼어내 매각을 고민하는 건 류진 회장의 승계 고민 때문이다.

    류진 회장의 장남인 로이스 류(Royce Ryu)씨는 지난 2010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류씨와 류씨의 남매인 류성왜 씨는 각각 풍산홀딩스의 2.4%, 3.3%를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권 지분의 대부분(37.6%)은 류진 회장이 보유하고 있다.

    현행 방위사업법상(50조의 2) 외국기업 또는 외국인이 방위산업체를 인수하기 위해선 방위사업청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해당 조문은 사실상 외국인의 국내 방산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배력을 갖는 건 불가능한 조항으로 해석돼 왔다. 

    최근엔 한층 강화한 방위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고, 개정안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방위사업법 개정안(50조의 3 신설)에는 외국인이 방산업체의 지배력을 갖는 것을 넘어, 임원 선임과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 역시 방위사업청장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했다. 기술의 해외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로 외국인의 경영참여는 물론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걸 원천봉쇄 하겠단 취지다.

    1993년생인 로이스류 씨가 병역의무가 끝나는 만 36세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해 경영권 지분을 승계 받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업계에선 현재 풍산의 행보를 사실상 사업구조와 지배구조를 동시에 재편하겠다는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M&A 거래가 수면위로 등장하기 전부터 풍산그룹은 방위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인수후보를 추렸다. 그 중에서도 잡음이 최소화할 만한 전략적투자자(SI)들과의 협상하겠단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거래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당시부터 이미 유력 SI가 딜 성사에 근접했단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극소수의 후보들만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류진 회장이 현재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배경도 풍산이 거래를 최대한 조용히, 또 매끄럽게 진행하고 싶어한 요인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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