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님들 먼저"…산업은행·기업은행 지방이전 선도 카드 부상
입력 2026.04.16 07:00

취재노트

지선-총선 이어지자 정책금융 재배치론 부상

산은·기은 선행해 흐름 만든다는 전략 감지

기업은행 대구 이전론…與 내부 공감대 확산

통폐합 선행 원칙에 행정은 신중…온도차 뚜렷

속도·순서 엇갈리며 현실화까진 변수 여전

  •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금융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과거처럼 특정 기관을 찍어 이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한 재배치 구상이 동시에 거론되는 점이 눈에 띈다. 단일 사안이 아니라 판 자체를 다시 짜는 접근이라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는 해당 논의를 단기 이슈로 보지 않는다. 지방선거 이후 곧바로 국회의원 총선 국면으로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지역 공약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 여당 관계자는 "지금은 물밑에서 얘기가 오가는 단계지만 선거를 거치면 자연스럽게 공약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며 "이미 큰 틀은 잡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논의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대상'보다 '순서'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이른바 큰형님을 먼저 움직여 전체 흐름을 만들겠다는 전략이 공유되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공제회나 연기금 등 작은 기관부터 건드려서는 효과가 없을 수 있다"며 "상징적인 기관 하나만 내려보내면 이후는 훨씬 빠르게 풀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당론은 최근 HMM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정부 지분이 높은 민간 기업의 본사 이전 논의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책 방향이 정해질 경우 실행 속도는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평가다. 금융권에서는 "민간까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공공기관"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이 기업은행이다. 정치권에서는 기업은행을 상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카드'로 본다. 상장사라는 제약이 있지만, 법 개정을 통해 본점 이전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 법안은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발의된 바 있다.

    이전 지역으로는 대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선거를 앞두고 기업은행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같은 흐름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역 민심을 고려하면 금융기관 하나 정도는 배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기업은행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계산도 작동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상징적인 기관 하나를 배치해 주는 방식으로 선거 구도를 관리하려는 시도다. "험지에 출마하려면 떡(?) 하나는 줘야 한다"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은행이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배경 역시 이 같은 정치적 활용도와 무관하지 않다.

  • 산업은행 역시 빠지지 않는 카드다. 이미 부산 이전 논의가 한 차례 추진된 전례가 있어 정책 상징성이 크고, 다시 초기 사례로 활용하기 용이하다는 평가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젠 이전 자체를 막기보단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한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모든 기관이 같은 선상에서 논의되는 것은 아니다. 공제회나 연기금 성격 기관에 대해서는 정치권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적지 않다. 투자 의사결정 조직과 네트워크를 함께 옮겨야 하는 구조인 데다, 내부 구성원 대부분이 노조에 속해 있어 저항 강도가 크기 때문이다. 

    정책 논의의 또 다른 변수는 행정 절차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에서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앞서 통폐합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기능이 중복된 기관을 정리한 뒤 이전 대상과 배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실제 이전 논의는 지방선거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은 선거를 계기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행정 절차상 속도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치는 이미 다음 단계를 보고 있지만, 행정은 아직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금융위원회의 세종 이전 가능성이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고, 금융감독원도 지방 이전 후보로 언급된다. 물론 감독 기능의 특성상 실제 추진까지는 적지 않은 변수가 남아 있다.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이전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관련 논의만으로 조직 내부 분위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 이탈 가능성은 금융권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변수다. 앞선 금융권 관계자는 "결정이 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먼저 움직이거나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지방이전 논의의 핵심은 '가능성'이 아니라 '출발점'에 있다. 어떤 기관이 첫 사례로 선택되느냐에 따라 이후 흐름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그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금융기관 지방이전 이슈는 다시 한 번 정치 일정과 정책 현실, 그리고 시장 논리가 교차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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