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다시 화두 됐는데…자사주 소각 이중부담 된 지주사들
입력 2026.04.17 07:00

금리 변동성·차환 부담 속 현금 운용 부담 확대

CAPEX 진행 중이거나 차입 부담 큰 기업 우려

소각 의무 예외 인정받기 위한 정관 변경도 다수

  • 재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다시금 기업들의 부담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주환원 확대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최근 중동 사태 등 유동성 환경이 빠르게 경색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체감하는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금리 변동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투자 수요는 여전하고, 일부 그룹은 자산 매각과 외부 조달을 병행하며 유동성 관리에 나선 상황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사주 소각까지 병행해야 할 경우 현금 운용 전략 전반을 재조정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자사주를 자회사 지배력 유지와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했던 지주사들의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그간 자사주는 주주환원 수단을 넘어 기업들이 위기 국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무 완충 장치'로 기능해 왔다. 필요시 매각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거나 자기주식을 대상으로 한 교환사채(EB) 발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 조달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과정에서도 일부 기업들은 자사주를 활용해 유동성을 보완해 왔다.

    결국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인해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응 카드가 줄어드는 셈이다. 특히 설비투자(CAPEX) 사이클이 진행 중이거나 차입 부담이 높은 기업일수록 영향이 클 것이란 분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려는 상황이지 적극적으로 소각에 나설 환경은 아니다"라며 "자사주가 사실상 유동성 버퍼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지난 9일 크레딧 세미나를 통해 자사주 의존도가 높은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 필요성이 커졌다고 짚었다. 한신평은 "이번 상법 개정으로 채권자와 신용평가 관점에서의 추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며 "특히 자기주식 제도 개편으로 자사주 활용 여지가 크게 축소될 전망"이라고 꼬집었다.

    지주사들의 부담은 더 크다. 지주사들은 자회사 지배력 유지와 그룹 지배구조 관리 과정에서 자사주 활용도가 높아 단순한 주주환원 이슈를 넘어 그룹 전반의 유동성 관리 문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지주사의 자사주 지분율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롯데지주(27.5%), SK(24.8%), 두산(15.2%), LS(13.9%), HD현대(10.5%), 한화(7.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소각 과정에서 재무 여력 축소와 지배구조 유연성 저하를 동시에 감내해야 한다.

    특히 최근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을 감안하면 부담은 더 부각된다. 시장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차환 부담이 존재하고, 일부 그룹은 자산 매각이나 비주력 사업 정리를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국면에서 자사주 소각까지 병행할 경우 단기 유동성 관리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자사주 소각은 회계적으로 자기자본 감소로 이어진다. 이는 부채비율 상승 등 재무지표 변화를 동반하며, 신용도 측면에서도 완충 여력이 줄어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사주를 활용한 EB 발행 등 기존 자금조달 수단 역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업종별로 온도차는 감지된다. 금융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평가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은 자사주를 주로 주가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 목적에서 활용해 온 만큼 구조적인 부담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소각의무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정관 변경도 이뤄졌다.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전략적 제휴, 사업구조의 개편, 인수합병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또는 관련 법령에 따라 허용되는 경우 자기주식을 보유 또는 처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 CJ, CJ대한통운,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미래에셋증권, 롯데지주, 롯데쇼핑 등 70개 이상의 상장사가 관련 정관을 변경했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자체는 주주환원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지금처럼 유동성 관리가 중요한 시기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경우 기업 부담이 더 부각될 수 있다"며 "자사주 소각 유예기간 동안 기업별 재무 상황에 맞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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