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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The Carlyle Group)이 한국사무소에 대한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사모펀드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체어맨'(Chairman) 타이틀도 수년 만에 등장했다.
업계는 이번 인사를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 칼라일 '코리아'의 위상이 약화된 방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023년 이규성 CEO 퇴임 이후 칼라일그룹 이끌고 있는 하비 슈워츠(Harvey Schwartz) CEO의 '중앙집권형' 조직운영 방침이 반영된 상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로컬 사무소에 '총괄대표'와 '대표가' 공존
그간 한국사무소를 이끈 김종윤(존킴) 대표가 한국 '총괄대표'(Chairman of Korea)로 선임됐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출신으로 신임 매니징 디렉터(MD)로 영입된 정익수 부대표는 '한국 대표'(Head of Korea)로 선임됐다. 정 대표가 한국 투자를 주도하고, 김 총괄대표가 이를 지원하는 체제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김종윤 대표에 형식상 예우를 취하며 사실상 '퇴진'의 문을 열어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종윤 대표는 2019년 초 칼라일 한국 대표로 부임했다. 한국 시장 철수설까지 거론된 상황에서 골드만삭스 출신 전문가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케이스다. 이후 칼라일은 KB금융지주, 카카오모빌리티, 투썸플레이스, 현대글로비스 등 경영권과 소수지분 투자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2022년말 매니징 디렉터(MD) 승진자도 배출했다.
다만 김 대표가 올해 59세 (1967년생)인 데다, 최근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젊은 리더십으로 교체를 단행하고 있다. 신임 칼라일 정익수 대표가 1978년생이고 최근 베인캐피탈 한국대표로 영입된 배민규 대표가 1983년생이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PEF 업계에서의 '체어맨' 직함은 일선에서 뛰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중의적인 자리"라고 말했다. 과거 같은 투자은행(IB) 출신인 JP모건 임석정 대표가 CVC캐피탈로 옮기면서 '한국 회장'(Chairman) 직함을 달긴 했지만, 그런 사례는 많지 않다. 하영구 블랙스톤 한국법인 회장처럼 후선에서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의미가 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칼라일은 한국사무소에 따로 '승진자'를 배출할 상황도 아니다. 한국이 회장을 따로 둘 정도로 큰 시장이 아닌 데다, 지난 수년간 회수 성과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각 개인의 체면을 살려주다 보니 발생한 전형적인 직급 인플레이션 케이스"라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 프로페셔널 조직이 10명도 채 되지 않는 한국 사무소에 '대표'와 '총괄대표' 를 각각 두는 상황이 생겼다는 해석이다.
'분권형 모델'에서 '중앙집권형'으로 바뀌는 칼라일
알려진대로 칼라일은 KKR, 블랙스톤 같은 다른 글로벌 PEF와 달리 '그룹'(Group)라는 명칭을 써온 조직이다. 설립 초기부터 아시아, 유럽과 각 산업 섹터별 펀드에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며 성장하는 이른바 '분권형 모델'을 도입했다. 이런 특징은 칼라일이 현지 시장에 정통한 파트너들에게 전권을 주면서 발빠르게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하지만 역으로 칼라일만이 가진 글로벌 차원의 일관된 투자 철학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심지어 지역 헤드들의 영향력이 글로벌 본사 통제를 넘어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칼라일의 체질을 바꾸려 했던 인물이 전임 칼라일 글로벌 CEO인 이규성 대표다. 그는 '원 칼라일'(One Carlyl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별 펀드 운용체계를 중앙집중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본사와 각 지역 파트너 및 지역 리더들과 갈등이 불거지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충돌은 이규성 CEO가 2022년 8월 계약 갱신 과정에서 이사회와 이견 등으로 갑작스레 사임하게 된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 문제를 두고 '칼라일 정체성의 위기' (Carlyle's Identity Crisis 2022.8.11)라는 테마로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이규성 대표 퇴임 이후 칼라일은 2023년 골드만삭스 출신인 하비 슈워츠를 새 글로벌 CEO로 영입했다. 그는 취임 후 단행한 첫 주요 인사 조치로 역시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2007년 칼라일에 조인한 '존 레데트'(John Redett)를 최고재무책임자(CFO) 및 기업전략 책임자로 취임시켰다. 존 레데트는 올해 1월 공동 사장(Co-President)이자 글로벌 사모펀드 총괄로 승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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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 글로벌의 새 지도부는 이규성 CEO처럼 '원 칼라일'이란 슬로건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골드만삭스 출신답게 수익성 개선, 그리고 조직의 기강을 잡는 데 집중해 왔다. 실적이 부진했던 사업라인을 과감히 정리하고, 보상 체계도 개편해 개별펀드의 성과 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 성과에 연동 시켰다.
올 초 칼라일 글로벌은 성과가 부진했던 유럽 사모펀드 팀 리더십을 아예 전면 교체하는 등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슈워츠 CEO가 '월스트리트 스타일'로 칼라일 조직을 잘 훈련되고 중앙집중화돼 수익을 잘 내도록 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고 평가해 왔다.
칼라일 한국사무소의 조직 개편 또한 이런 본사 차원의 '체질 개선' 일환에 해당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칼라일 한국사무소는 정익수 대표가 새로 영입되는 과정에 개입하지 못하고 본사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만 뒤늦게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영입이나 조직개편 등을 아예 글로벌에서 주도했고 관련 인사들은 뒤늦게서야 이른 소식을 전달 받았다. 한국사무소도 칼라일 글로벌의 '기강잡기' 대상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사무소가 아시아 펀드 혹은 본사의 'Kill'을 이겨낼 수 있을까
향후 관건은 칼라일 한국사무소의 '영향력'이다. 한국사무소가 발굴하고 제안하는 거래가 아시아 펀드 헤드(X.D.Yang) 혹은 글로벌 리더십의 깐깐한(?) 심사를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다.
이미 칼라일은 한국사무소의 활동에 대해 아시아 펀드의 입김이 컸던 것으로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칼라일 한국사무소는 2022년 초 투썸플레이스 인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투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례로 2022년말 최대 거래였던 메디트 인수전의 경우, 김종윤 대표가 직접 협상에 앞장서면서 칼라일이 매각자인 UCK파트너스와 가장 치열하고 긴밀하게 협상을 진행했다. 한때 칼라일의 인수가 유력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거래는 막판에 결국 무산됐고, 뒤늦게 협상장에 나타난 MBK파트너스가 메디트의 새 인수자가 됐다. 이 사태를 두고 칼라일 한국사무소가 칼라일 아시아 혹은 본사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우려가 줄을 이었다.
칼라일은 2024년 태영그룹과 KKR이 매물로 내놓은 에코비트 인수전에 참여했다. 인수전 중반까지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며 오랜만의 조단위 경영권 인수 성과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판 인수 금액을 크게 높인 IMM컨소시엄에 밀리기도 했다.
달리 말해 같은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무게감'이 상당했던 김종윤 대표가 굳건히 자리를 유지할 때도 본사의 '거래종결 신호'(kill the deal)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제는 필요할 경우 지역 사무소의 인력 전반을 날려버릴 정도로 칼라일 글로벌 본사 차원의 관리는 집중화되고 강화됐다. 이 와중에 젊고 또 기존보다 직급이 낮은 새 지도부가 '입찰가격 상승' 등을 요청할 때 쉽사리 받아들여지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셈이다.
입력 2026.04.21 07: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4월 17일 16:06 게재
정익수 대표-김종윤 총괄대표 체제로 개편
김종윤 대표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난다는 시각
"돈 못번다" 싶으면 로컬 사무소 전부 날리는 칼라일
무게감 떨어진 한국사무소의 아시아ㆍ본사 간섭 통과여부 관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