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알글로벌리츠, 예고된 디폴트였나… 구조적 리스크 두고 불거지는 '책임론'
입력 2026.04.30 15:18

현금흐름 묶인 ‘캐시트랩’에 회생 신청… 시장 파장 확산

환헤지 정산금 부담과 현지 감정가 갈등이 ‘도미노’ 원인

  • (그래픽=이지연)

    제이알글로벌리츠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법정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수많은 주주와 채권자가 손실 위기에 처한 가운데, 우량 자산을 보유한 리츠가 어쩌다 회생 신청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몰리게 됐는지 그 경위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환헤지 정산금 부담과 차입 확대, 벨기에 파이낸스타워 감정가치를 둘러싼 현지 감정평가법인과의 이견 등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는 일정 부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에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이러한 리스크를 시장에 충분히 설명했는지를 두고 책임론 역시 고개를 들고 있다.

    3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서울회생법원에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고 27일 밝혔다. 해외 부동산 담보가치 하락으로 현금 흐름이 묶이는 ‘캐시 트랩(Cash Trap)’이 발생한 영향이다. 흑자 기조에도 불구하고 400억원 규모 전자단기사채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결국 법원의 판단에 맡기게 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임대료 수익이 꾸준히 발생하는 상황에서 디폴트에 이른 점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환헤지 정산금 등으로 빠르게 불어난 차입 ▲현지 감정평가를 둘러싼 갈등 ▲사실상 막힌 자산 매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토부 권고가 ‘독’으로… 환헤지 정산금에 발목 잡힌 유동성

    우선 차입금이 급격히 불어난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츠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위기는 지난 2024년 담보대출 연장과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본격화됐다.

    2020년 벨기에 파이낸스타워 매입 당시 조달한 약 1조 원의 담보대출을 리파이낸싱하는 과정에서 금리가 1%대에서 4%대로 치솟았다. 여기에 자산가치 하락으로 대출 한도까지 줄어들자,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국내 시장에서 2200억원 규모의 사채를 발행했다. 현재 사채 원리금 4000억원 중 절반가량이 이 시기에 늘어난 셈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유동성 악화의 ‘주범’으로 환헤지 정산금을 지목한다. 매입 당시 국토교통부의 권고로 100% 환헤지를 실행했으나, 고환율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금융기관에 막대한 차액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마진콜’ 성격의 채무가 발생했다. 2020년 1200원대였던 환율이 1500원대로 급등하며 정산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엇보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3년 만기 계약을 6개월 단위로 쪼개 정산하는 구조를 택해 반년마다 현금 유출 압박에 시달렸다. 오는 5월 돌아오는 환 정산금만 약 900억원에 달해, 현금을 쌓아두지 않는 리츠 특성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해외 대주단 영향력 속…현지 평가 갈등이 드러낸 국내 운용사의 한계? 

    직접적인 방아쇠는 유상증자 실패였지만, 그 이면에는 해외부동산을 운용하는 국내 운용사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지난 1월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공시했으나, 현지 자산에 대한 감정평가가 지연되며 결국 이를 철회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자산가치 하락폭을 두고 제이알글로벌리츠와 현지 감정평가법인이 겪은 심각한 이견차에 주목한다. 현지 감정평가법인은 대주단(대출 기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경우가 많아, 하락장에서는 보수적인 평가를 내놓기 마련이다. 이미 지난해 3월 기준 LTV(담보인정비율)는 52.8%로 올해 캐시트랩 기준선(52.5%)을 넘긴 상태였다. 이에 국내 운용사가 현지 평가 시스템이나 대주단의 결정에 대응할 카드는 마땅치 않다는 평가다. 현재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자산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캐시트랩 발생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는지를 두고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LTV 수치가 이미 기준치에 근접해 있었던 만큼, 관련 리스크에 대한 사전 안내가 충분했는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2조원대 자산 매각 ‘쉽지 않아’… 국토부 특감에도 뾰족한 수 없어

    일각에선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점이 사태 장기화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처럼 약 2조원 규모의 대형 자산은 현재와 같은 글로벌 부동산 경기 환경에서 매수자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평가다. 자산 규모가 큰 만큼 매각 시점과 가격을 조율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부 차원의 대응 역시 제한적인 범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말 파이낸스타워 감정평가를 둘러싼 민원이 이어지자 국토교통부가 제이알글로벌리츠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지만, 구조적인 문제 해결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이번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는 해외 부동산 리츠가 가진 구조적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환율 변동과 자산가치 조정이 동시에 작용하는 환경에서, 향후 회생절차를 통해 유동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가 급등 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금리 상승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해외 부동산 상장 리츠 전반에 유사한 리스크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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