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보다 귀한 BBB? 생산적금융 경쟁에...중·저신용 크레딧 몸값 뛴다
입력 2026.06.01 07:00

발행어음·IMA 모험자본 의무비율 단계적 상향

대기업 A급 제외에 중견·BBB·P-CBO 수요 확대

과거 하이일드펀드 장세와는 다른 정책 프리미엄

무차별 BBB 랠리보다는 선별적 가격 왜곡 가능성

  • 생산적금융과 모험자본 공급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중·저신용 크레딧 시장을 바라보는 증권사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를 운용하는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실적을 맞추기 위해 중견기업 회사채, BBB급 채권, P-CBO, ABS, 하이일드펀드 등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일부 BBB급 크레딧이 A급 자산보다 더 귀해지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용등급 자체로는 A급이 우위지만, 모험자본으로 인정되는 일부 중견기업 BBB급 회사채나 정책금융 연계 구조화 자산에는 증권사 북(book) 수요가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과거 공모주 하이일드펀드 장세에서 나타났던 'BBB급·A급 금리 역전'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다. 당시에는 하이일드펀드가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을 받기 위해 BBB+ 이하 회사채를 의무적으로 담아야 했고, IPO 시장이 달아오를수록 펀드 자금이 BBB급 채권으로 직접 유입됐다. 그 결과 일부 BBB급 공모채가 A급 회사채보다 낮은 금리에 발행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의 시장 상황은 공모주 배정 수익을 좇는 펀드 자금이 BBB급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이는 구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발행어음·IMA를 운용하는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의무비율을 맞추기 위해 '인정 가능한 자산'을 선별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BBB급 전체가 A급보다 강해진다기보다는, 모험자본 실적으로 인정되고 신용보강이나 성장 스토리까지 갖춘 일부 자산이 개별 딜 단위에서 A급 못지않은 조건으로 소화될 수 있다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발행어음·IMA 사업을 영위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은 올해부터 모험자본 공급 실적 관리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금융당국은 발행어음·IMA 조달액의 일정 비율을 모험자본으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했다. 올해 10%인 의무비율은 내년 20%, 2028년 25%까지 높아진다.

    인정 범위에는 중소·중견·벤처기업이 발행한 증권과 대출채권,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한 A등급 이하 채무증권,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보증 P-CBO, 코스닥벤처펀드, 하이일드펀드, 소부장펀드 등이 포함된다.

    이 구조에서는 단순히 신용등급이 높은 자산만 담아서는 실적을 채우기 어렵다. 국내 A급 회사채 상당수는 대기업 계열 발행사가 차지한다. 대기업 계열사가 발행한 A급 채권은 모험자본 인정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어, 증권사들이 찾는 자산은 자연스럽게 중견기업 A급 채권, BBB급 채권, P-CBO, ABS 등으로 좁혀진다. 여기에 부동산 관련 자산 운용한도 축소도 맞물리면서 종투사 자금이 새로 향할 자산을 찾아야 하는 압박도 커졌다.

    증권사 내부 심사 기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에는 중·저신용 크레딧을 자체 북에 담는 데 신중한 분위기가 강했지만, 생산적금융 실적이 본격적인 관리 대상이 되면서 관련 딜을 보는 눈높이도 일부 유연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형 증권사 IB 관계자는 "모험자본 비율을 맞춰야 하는 만큼 관련 딜은 일반 IB 딜보다 심사를 더 긍정적으로 보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좋은 딜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어서 증권사들 간 경쟁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실제로 비우량채 시장은 이미 정책 수요와 선별 심리가 공존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초 하이일드펀드 수요가 붙은 일부 BBB급 채권은 민평 대비 낮은 금리에서 소화됐고, 최근에도 이랜드월드 등 일부 BBB급 발행사는 모집액을 웃도는 주문을 확보했다.

    반면 동화기업은 BBB+ 등급에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다. 지속된 적자와 재무 부담이 투자심리를 누르면서, 같은 BBB급 안에서도 발행사별 온도 차가 크게 갈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해석된다.

    결국 앞으로의 가격 결정 변수는 단순한 등급보다 '모험자본 인정 여부'와 '개별 크레딧 스토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 계열 제외 요건에 걸리지 않는지, 중견·중소기업 성장자금 성격이 명확한지, 정책금융 보증이나 구조화 장치가 붙어 있는지, 등급 상향 가능성이 있는지 등이 수요를 가르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BBB급 기업은 공모채 시장 접근이 쉽지 않아 은행 차입이나 사모 조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증권사들이 모험자본 실적을 채우기 위해 중·저신용 크레딧 발굴에 나서면, 일부 중견기업은 공모채나 구조화 조달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특히 실적 개선세가 뚜렷하거나 A급 진입 가능성이 있는 BBB+급 기업은 금리 부담을 낮추며 시장성 조달에 나설 수 있다는 평가다.

    반대로 가격 왜곡 우려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정책 실적을 채우려는 수요가 신용위험보다 앞서면 리스크 대비 금리가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 딜이 나올 수 있다. 모험자본이라는 명분 아래 증권사들이 심사 기준을 지나치게 낮출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발행어음·IMA 운용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어떤 자산이냐보다 모험자본으로 카운팅되느냐가 먼저 검토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정책 취지상 중·저신용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개선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일부 자산은 실제 위험보다 비싸게 거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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