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대 공모에도 5조 뭉칫돈...IPO 시장 '유동성 폭주'
입력 2026.06.02 07:00

스팩 제외 14개 공모주 일반청약 증거금에 108조원

100억~500억원대 공모주에도 수조원대 자금 유입

대어 부재 속 평균 경쟁률 1876대 1까지 치솟아

단기 차익 수요 우세...공모가 검증 약화 우려도

  • 대형 기업공개(IPO) 공백 속 공모주 시장에 수조원대 청약자금이 몰리고 있다. 올해 상장한 기업 대부분이 500억원 미만의 중소형 공모였지만, 일반청약 증거금은 적게는 3조원대에서 많게는 13조원대까지 불어났다. 증시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마땅한 대형 공모주가 부재하자, 단기 차익을 노린 자금이 중소형 공모주로 압축 유입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29일 기준 올해 스팩(SPAC)을 제외하고 상장한 14개 기업의 일반청약 증거금은 약 108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의 일반청약 경쟁률은 평균 1876대 1에 달했다. 14개 기업의 공모금액을 모두 더해도 약 1조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모 규모 대비 청약자금 유입 강도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공모 규모와 비교하면 유동성 쏠림은 더 두드러진다. 100억원대 공모주에도 수조원대 자금이 붙었다. 에스팀은 153억원 공모에 3조7501억원, 리센스메디컬은 154억원 공모에 4조380억원의 청약증거금을 모았다. 폴레드는 공모금액이 130억원에 그쳤지만 일반청약에서 5조2000억원의 증거금이 유입됐다. 

    300억~500억원대 공모주에도 10조원 안팎의 자금이 몰렸다. 마키나락스는 395억원 공모에 13조8722억원의 증거금을 모았고, 아이엠바이오로직스는 520억원 공모에 11조7000억원의 청약증거금을 기록했다. 카나프테라퓨틱스와 액스비스도 각각 400억원, 265억원 공모에 9조원대 증거금이 유입됐다. 과거 대형 IPO에서나 확인되던 조 단위 청약자금이 중소형 공모주로 옮겨붙은 모습이다.

    일반청약 경쟁률도 대부분 1000대 1을 웃돌았다. 공모 규모가 1000억원을 넘은 케이뱅크와 채비를 제외하면 경쟁률은 대체로 1000대 1 후반에서 3000대 1 수준에 형성됐다. 폴레드는 3170대 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고 마키나락스는 2807대 1, 액스비스는 2711대 1, 메쥬는 2428대 1을 나타냈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어가 부재한 상황에서 증시 유동성이 중소형 공모주로까지 옮겨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증시 호조로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진 데다, 상장 첫날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자금이 공모주 시장으로 유입된 영향이다. 공모 규모가 작을수록 배정 물량은 제한적인 반면 청약 참여 자금은 크게 늘어나 경쟁률과 증거금 규모가 동시에 뛰는 구조다.

    올해 IPO 시장에서는 조 단위 대어가 부재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타진하는 기업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소재업체 에스에프씨(SFC)와 유인경비업체 에스텍시스템 정도가 거론된다. 

    10조원 안팎의 기업가치가 거론되는 무신사와 구다이글로벌은 내년 상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조 단위 시가총액이 언급되는 리벨리온과 업스테이지도 상장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실제 증시 입성 시점은 내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올해 공모주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을 받아낼 대형 딜이 부족한 셈이다.

    국내 증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반도체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공모주 시장에서는 업종별 차별화도 뚜렷하지 않다. 바이오와 인공지능(AI), 로봇 등 성장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뿐 아니라 의류업체 피스피스스튜디오, 육아용품 업체 폴레드 등 소비재 기업에도 수조원대 청약증거금이 유입되고 있다. 기업의 업종이나 체급보다 공모주 자체에 대한 단기 투자 수요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공모주 시장의 유동성이 기업가치 검증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관 수요예측에서 공모가가 밴드 상단이나 그 이상으로 결정된 뒤 일반청약에서 대규모 자금이 몰리는 흐름이 반복되면, 개별 기업의 실적과 성장성보다 수급이 공모 흥행을 좌우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모가가 적정한 수준인지 따지는 가격 발견 기능보다 상장 직후 차익 실현 가능성이 더 크게 반영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공모주 흥행은 수요예측과 일반청약의 숫자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과 별개로, 상장 이후 주가 흐름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공모 단계에서 유입된 자금이 단기 매매 성격에 가까울수록 상장 직후 주가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의무보유 확약 비율, 유통 가능 물량, 기존 투자자의 엑시트 구조에 따라 상장 이후 수급 부담이 빠르게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모주 시장은 기업의 체급과 무관하게 청약 자금이 크게 붙는 분위기"라며 “대형 IPO가 많지 않다 보니 단기 자금이 중소형 공모주로 몰리고 있고, 일부 딜은 공모 규모에 비해 청약 열기가 과도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위로